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

【도서요약】


 위대함과 조잡함의 차이는 적극적인 자세와 고통과 인내를 견뎌낸 창작과정에 있다

◆ 위대한 크리에이터들은 한 명의 팬을 대상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 모두를 만족시키려 한다면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

◆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가 되기보다는 유일한 그룹이 되려고 노력하라

◆ 소심한 방식으로 포장하는 방식 대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담함을 발휘하라



린디효과란 오래 살아남으면 그만큼 수명이 연장된다는 의미다. 콘텐츠 분야는 특히 린디효과가 많이 작용한다. 불멸의 작품은 대를 이어 인기를 누린다. 『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는 불멸의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를 고민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아웃풋이 중요하다"


이는 가장 뻔한 소리지만 가장 중요한 말이다. 결과물이 올바르게 제대로 나온다면 마케팅의 영역이 줄어든다. 제품이 좋을수록 마케팅이 잘 된다. 아웃풋이 약하면 마케팅에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하고, 제품의 질은 더욱 떨어진다. 이런 악순환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형편없는 작품은 살아남지 못한다. 평범한 작품을 만들어놓고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라고 타협하는 순간, 망하는 지름길에 접어들게 된다. 훌륭한 작품은 창작자의 마인드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전으로 남을 작품'을 간절히 바라는 마인드에서부터 불멸의 작품이 탄생한다. 최고의 아웃풋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최고의 제품을 만들지 못한다. 


단, 최고의 작품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크리에이터는 무엇보다 불멸의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해야하며, 더 나아가 이를 소명으로 삼아야 한다. 한편으로 크리에이터는 연구원이다. 이들은 항상 자신이 몸 담은 분야의 '고전적 업적'들을 찾아 연구하고, '마스터'들의 위대함과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장인들의 기법과 창작물을 모방할 줄도 알아야하고, 창작과정에서 작품이 '영원성'을 가질 수 있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무시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위대한 작품들은 공통점이 있다. '위대한 작품'이라는 단어 아래에는 작품을 만들어 낸 과정 자체가 '투쟁'이며, 엄청난 희생의 역사가 깔려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나 방법을 배우지 않은 채 적당한 노력만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기대한다면 시간낭비만 하게 된다. 그래서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는 없다.



"아이디어를 믿지 마라"


세상에 널려있는 게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낼 수 있다. 영화 제작자 1]케이시 나이스탯(Casey Neistat)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싶다는 크리에이터 지망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아이디어 따위에는 관심 없습니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내니까요"


케이시 나이스탯이 건방지게 보일 수 있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다. 아이디어는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 나아가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누구나 아이디어가 빼곡히 적힌 과거의 노트가 있고, 태블릿 pc에는 아이디어로 빽빽히 적힌 폴더가 있다. 아이디어는 널려있다. 위대한 결과물은 결코 아이디어 상태로 남아있지 않다. 크리에이터가 첫 아이디어를 실체가 있는 결과물로 만들어내고자 몰입하고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 극도의 고통과 희생이 끈끈하게 묻어있는 결과물이 바로 위대한 결과물이다.


위대한 결과물을 내고 싶다면 '시간과 노력, 극도의 고통과 희생'을 피해갈 수 없다. 만일 이러한 과정을 남에게 맡기거나 돈으로 대신한다면 얼마가지 못해서 무너진다. 위대한 작품에는 방도가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이 직접 그 작업을 해야한다. 



"왜 창조하는가?"


크리에이터가 위대한 작품을 만들수 있을지 없을지는 질문 하나로 결정된다. 


"왜 창조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크리에이터의 성공 가능성의 정도를 결정한다.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는 과정부터 위대하다. 이들은 작품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며, 끊임없이 본질적인 완성도에 대해서 고민한다. 


모든 창작은 올바른 의도로 시작돼야 한다. 올바른 의도는 위대한 작품에 있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근본과 같다. 가령, 돈을 좇아 불나방처럼 유투브에 뛰어든 사람들은 평생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크리에이터의 창작이란, 작품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비단 창작 분야가 아니더라도 강력하고 중요한 어떤 것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최소한 그에 걸맞은 강력한 내적 동기와 희생이 필요하다. 아무리 강력한 외적 동기도 강력한 내적 동기보다 앞설 수 없다. 강력한 내적동기가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따라서 예술은 낭만적이지 않다. 진정한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면 스스로에게 물어야한다. 

"나는 이것을 위해 무엇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을까?" 위대한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에는 시간, 안정적인 생활과 수입, 주변의 인정 등 기꺼이 희생한 것들이 많다. 창작이라는 일은 많든 적든 언제나 '희생'을 요구한다. 만일 아무런 희생이 필요없는 작품이라면 그것은 곧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낮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곧 누구나 따라하는 카피캣이 넘칠테니깐) 해야 할 가치가 있다면 제대로 할 가치가 있다. 외부에서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내부동기에 의해 가치를 느꼈다면 제대로 하는 사람이 바로 크리에이터다.



"크리에이터의 창의성이란"


창의성에 관한 전설과 같은 말들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실베스타 스탤론은 사흘 반만에 영화(록키) 대본을 완성했다. 2]잭 케루악(Jack Kerouac)은 「길 위에서라는 작품을 마약에 취해 3주 만에 써냈다. 창의성에 관한 한 유레카와 같은 환상이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해밍웨이는 "글쓰기는 단지 타자기 앞에 앉아 피를 흘리는 게 전부다"라고 표현했다. 실제 해밍웨이는 자신의 원고를 엄청나게 꼼꼼히 뜯어고치기로 유명했다. 3]존F.케네디 도서관에는 결말이 서로 다른 "무기여 잘 있어라"가 47권이나 있다. 해밍웨이는 그 책의 1부를 50번 이상 다시 썼다. 그는 퍼즐 조각을 맞추듯 글을 쓰려고 했고, 최종적으로 앞뒤가 딱 맞을 때까지 고쳐 썼다. 


위에서 소개한 잭 케루악 역시 마약에 취해 3주 만에 "길 위에서"초판을 써낸 후 무려 6년의 시간을 들여 수정했다. 케루악은 자신이 즉흥적인 작가이고 한 번 쓴 글은 절대 고쳐쓰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일부러 키웠다고 한다. 사실, 그는 글쓰기에 있어 장인과 같은 자세로 임했다. 위대한 크리에이터들은 가만히 앉아 번개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창작하면서 생각을 조립하면서 영감을 찾았다. 이들과 일반인의 차이점은 기다리지 않고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녔던 자세에 있다.


창의력과 관련된 확실한 이론은 없다. 통찰력은 완전하게 요리된 상태로 태어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위대한 것들도 초기에는 형편없었다. 위대함과 조잡함의 차이는 적극적인 자세와 고통과 인내를 견뎌낸 창작과정에 있다.


불현듯 떠오른 위대한 생각(창의력)은 적극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취득하고 난 뒤에 여러번 실패와 실행을 한 상태를 겪은 뒤에 찾아오는(휴식기) 선물이다. 시인 "4]존 키츠(John Keats)"는 이를 '부정적 수용능력(negative capability)'라 불렀다. 부정적 수용능력이란, 서로 모순되는 아이디어들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창의성은 여러 모순된 아이디어들이 마음 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닌 후, 조용한 휴식기를 거치면서 태동한 틀을 깨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입체적인 정보들을 많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지마라"


크리에이터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틈새를 찾아 그것을 긁었다. 즉, 틈새시장을 노렸다. 위대한 작품이 되려면 다음 질문에 반드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작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많은 크리에이터들은 위의 질문에 답하기 앞서, 모든 사람을 위한 작품을 만들려한다. 그 결과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작품이 탄생한다. "긁어줘야 할 곳"을 알지 못하면 긁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가령, 나쁜 글이란 뭔가 거창한 게 아니다. 글쓴이가 마치 자기 자신을 향해 읊은 연애시처럼 작성한 글이 나쁜 글이다. 반면, 목표 대상이 뚜렷한 글은 독자를 즐겁게 할 수 있는 확실한 논리가 있다. 위대한 작가들은 글을 쓸 때 한 명의 독자를 대상으로 쓴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위해 쓰는지 모르거나 누구를 위해 만드는지 모른다면, 자신이 올바르게 글을 쓰거나 작품을 만드는지 알 수도 없다. 즉, 완성과 미완성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크리에이터가 목표로 하는 작품의 타겟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된다면 순수예술 또는 취미활동이 된다. 책에서 설명하는 크리에이터는 순수 예술가와 다르다. 크리에이터는 굳건한 현실 위에서 작품활동을 영위하는 자다. 따라서 대상을 정해 그 한명부터 만족시키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훌륭한 크리에이터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게 된다. 크리에이터라면 작품을 만들기 전에 대상을 확실히 정해야하고, 작품을 만드는 동안에도 계속 대상을 정해나가야 한다.



"망하는 크리에이터의 지름길"


100개 이상의 실패한 스타트업 사례를 조사한 최근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그 결과란, 시장의 니즈를 만족시키기보다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진 경우, 실패하는 비율이 전체 실패사례의 42%에 달했다. 이는 특이한 현상이다.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아이디어가 왜 실패할까?  


사람들에게 오래 '울림'을 주려면 참신함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기존의 흔한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쓰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위대한 결과물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위대한 결과물은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와 바람을 만족시킬 무엇인가를 제공해준다.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는 힙합음악과 남녀간 사랑을 노래하는 음악을 비교해보자. 남녀가 있는 한 사랑음악은 영원히 필요할 것이다. 반면, 단순히 현재의 이슈나 트렌드에 대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고려한 작품은 이슈가 사라지면 조용히 퇴장한다. 대개 작품일 경우,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는 "즐거움"과 "유용성"이다.  


크리에이터 분야에서 최고의 마케팅은 "목적성"이다. "목적"이 없는 작품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목적은 크리에이터가 작품 제작을 시작할 때부터 설정해야 한다. 몇 초 동안 오락거리를 제공하더라도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 묻어나오거나 '인간 경험(공감)'이 다뤄진 작품들은 오래 기억된다. 인간 본연의 심층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문학들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노인과 바다, 달과 5펜스,이성과 감성) 



"크리에이터가 던져야 할 질문"


크리에이터는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든지 간에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1] 이것이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2] 이것이 무엇을 해결해주는가?

3] 내가 어떻게 즐거움을 주는가?

4] 내가 무엇을 주고 있는가?

5] 우리가 제공하는 것은 무엇인가?

6]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무엇에 돈을 지불할 것인가?란 질문에 대해서 답을 찾지 못한다면, 혹은 그 답을 떠올리면서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계속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 고민에 대한 답은 크리에이터의 분야에 따라 제각각일 수 있지만 확실한 점은 '특이점'에 있다. 사람들이 주로 돈을 지불하려고 줄을 서는 경우는 '최고인 것'이 아닌 '유일한 것'일 경우가 많다. 


대개 성공한 크리에이터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영역에서 최고가 되기보다는 유일한 그룹이 되려고 노력했고, 유일한 것이 최고인 것보다 낫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과감하고 대담한 용기 있는 결정을 과감하게 내릴 수 있다. 반면, 일반적인 크리에이터들은 기껏해야 기존의 것들보다 조금 낫고 조금 다른 것들을 만들어 내놓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A처럼 보이지만 B라는 특성을 갖고 있어"라며 핑계를 댈 뿐이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위대한 작품은 남들보다 조금 다른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신성한 암소"를 죽일 것인가?

-나는 어떤 관습이나 제도를 없앨 것인가?

-나는 어떤 집단을 파괴할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들 것인가?


적어도 위의 질문에 한 두가지 해당되는 일이라면 용감한 결정이 될 수 있다.(법과 도덕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불멸의 작가들은 소심한 문장으로 포장하는 방식을 집어치우고, 대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담함을 발휘했다. 그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을 만들려 용감하게 나아갔다. 또 온갖 지루한 관습에 맞섰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정말 이게 최선일까?"


볼 때마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새로운 재미를 주는 영화나 소설작품들은 첫 번째 시도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단 한번의 의식의 흐름 속에서 쓰여졌다면 그 작품의 구조는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어떤 경우라도 항상 '좀 더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더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위대한 작가들은 큰 그림을 그리되 동시에 '작게 생각'한다. 그들은 디테일을 끝없이 추구한다. 힘들더라도 세부적인 것들에 집착하고, 사람들이 보지 않을 부분이라고 해서 대충하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애인들(작품)을 죽이고 또 죽여라. 

작가인 당신의 자기중심적이고 소심한 심장이 터질지라도 

당신의 애인들을 죽여라"

 -스티븐 킹-


혁신가, 위대한 크리에이터들은 항상 '더'할 수 있을 때까지 갈구한다. 그래서 진정한 혁신가들은 창조 작업에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가짜 혁신가들이 미친듯한 자신감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불안과 두려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작품을 다시 개선하고 수정하고자 하는 열망이 높아질수록 프로젝트는 훌륭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신의 창작물에 의해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전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진정한 그들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위대한 크리에이터들은 자만심과 거리가 멀다. 혹시 결승선에 직선으로 돌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남들에게 의지하거나 땀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고 쉽게 목표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주의하라. 이들은 초반에 반짝하더라도 어느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오래 살아남는 위대한 작품을 창조하려면, 당연히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고 그리고 희생이 따를 수 밖에 없다.



1] 케이시 나이스탯(1981) : 미국의 유튜브 인물이다. 소셜 미디어 기업 Beme의 창업자 중 한 명이다.[1] 케이시와 그의 동생 밴 나이스탯(Van Neistat)과 함께 HBO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The Neistat Brothers》의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2] 잭 케루악 : 《노상》을 발표해 무명작가에서 일약 비트 제너레이션의 주도적 작가로서 주목을 받게 되었던 미국 소설가 겸 시인이다.


3] 존F 케네디 도서관존 F. 케네디 도서관 & 박물관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있는 도서관과 박물관이다. 1979년 설립된 이곳은 미국 35대 대통령 케네디를 추모하기 위해 헌정된 것으로, 케네디가 사랑한 보스턴 항구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건물에 위치해 있다. 존 F. 케네디와 동생 로버트 케네디의 유품이 전시돼 있으며, 기록영화가 상영된다. 20세기 중반의 정치학, 케네디의 삶과 리더십에 관한 역사적 자료를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4] 존 키츠《나이팅 게일에게》,《가을에》 등 영국의 사화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을 쓴 영국 

낭만주의 시인이다. 그는 첫 작품집 『시집(Poems)』에 이어 『엔디미온(Endymion)』을 출간하고,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며 유명한 시인이 된다.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스페인 광장 26번지(26 Piazza Di Spagna)에 방을 얻어 지내다가 1821년 2월 23일에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죽어 로마의 신도 묘지에 묻히고 만다. 그의 묘비에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작가인 프랜시스 보몬트(Francis Baumont)의 『필래스터(Philaster)』에서 따온 문구인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자가 누워 있노라(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가 쓰여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