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글쓰기

은유의 힘 (2) [장석주.2017]

by 도양강 2018. 11. 5.

은유의 힘 (2) 

-시인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은 것을 본다-

▷시인::견자(見者)


견자는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시인은 같은 형상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낸다. 우리는 시를 왜 읽을까? 누구나 볼 수 있는 표면적 의미를 그대로 해석하는 문장을 구태여 보려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이 남이 작성한 글이나 촬영한 각종 콘텐츠를 감상하려는 이유는 '체험'을 경험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체험'은 '경험'과 다르다. 경험은 외부의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피동적인 활동이다. 반면 체험은 외부에서 받아들인 경험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적극적인 활동이다. 좋은 콘텐츠란 경험이 아닌 체험의 연장선 위에 있다. 독자는 작가의 체험을 공감한다. 경험만 느끼려고 한다면 굳이 의미가 담겨있는 작품을 볼 필요가 없다. 


최근 펙트가 트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펙트만 제시된 콘텐츠는 처음에는 힘이 있지만 생각이 내면화되는 과정에서 힘을 잃어버린다. 


시인은 자신만의 해석으로 사물을 다르게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는, 같은 사물을 다른 각도로 보기 위해서이다. 시인이 왜 견자인지 알 수 있는 좋은 시가 있다.



무엇이 장미인가? 참수된 뒤 자라는 머리.

무엇이 먼지인가? 대지의 허파가 뿜어낸 탄식 일성.

무엇이 비인가? 먹구름의 열차에서 내린 마지막 승객.

무엇이 애탄 근심인가? 구김살과 주름살. 신경의 견직물 상의.

무엇이 시간인가? 우리가 입고 있는 옷. 다시는 벗어버릴 수 없는.


-아도니스 . '의미의 숲을 여행할 때 필요한 몇 가지 지침' 부분 -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보았던 장미, 먼지, 비, 옷에서 누군가의 감정과 생각을 읽고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면, 시는 힘을 갖는다. 시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자신만의 세계관과 철학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시인은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서, 세상과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존재다. 인은 의미있는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좋은 질문은 세계를 확장하고 공간을 만들어낸다.


좋은 축구선수가 끊임없이 빈공간을 찾아 움직이듯,  좋은 질문은 끊임없이 독자의 머리 속에서 빈공간을 창조한다. 가령, '돈이 없다'라는 표현보다, '드디어 우리는 이유없이 가난해졌다'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돈이 없다', '드디어 우리는 이유없이 가난해졌다' 는 똑같이 '가난'이란 부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유없이 가난해졌다'라고 한다면, 외부적인 압박, '필사적인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뭔가 있었다'는 느낌의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시인이 창출한 새로운 공간속에서 사람들은 과거 경험을 떠올리거나 공감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게 된다.


좋은 글은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의미를 유추하도록 인도한다. 독자들은 시인이 창조한 공간속에서 감정을 느끼고,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나아가기도 한다. 좋은 콘텐츠란 청자(독자)로 하여금 1차적 피상을 통해 2차적 공간을 창조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이것이 바로 견자의 역할이며 콘텐츠 제작자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