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기초 체력은 매일 글을 작성하는 근성에 있다. 일단, 써야만 글쓰기 기초 체력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초 체력(글쓰기 근성)이 부족하다. 흔히 말하는 문체나 문장력은 사실 잔재주에 불과하며,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작성할까?"이다. 실제로 소설가 지망생의 첫 번째 실패는 대부분 '무엇'에서 비롯된다. 소설가의 실패란 거창한 게 아니다. '처음부터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이야기 능력'이다. 우선,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면 소설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꽤 괜찮은 소재·글감으로 시작은 어떻게 하겠지만 결국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곧 막막해진다.
멋진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기초체력을 훈련하는 셈 치고, 일단 5분 동안 이야기 줄거리를 하나 만들어보자. 단, 처음부터 뭔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대충 플롯만 잡아도 상관없다.(플롯이란, 소설 내 사건을 2백자 정도로 정리한 이야기다) 분명한 사실은 '이야기를 짧은 분량으로 정리하는 힘'은 소설가가 되는 데 엄청나게 중요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5분 안에 뭔가를 써낸 사람이라면 첫 관문은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 이야기 체조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까?」
'오스카 에이지'는 자신의 책(이야기 체조)을 읽고 그대로 따라하다보면 자동으로 플롯과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야기 제작은 마치 공식처럼 제작이 가능하며,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발달 심리학의 '우치다 노부코'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 '선천적 이야기 능력'을 검증했다.
Q. '소녀', '할머니', '늑대', '숲', '꽃' 5장의 카드로 이야기를 만들어라.
위의 5장의 카드를 받으면, 너나 할것 없이 대부분 '빨간망토 차차'와 같은 이야기를 만든다고 한다. 혹자는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짜낸 게 아니냐라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이야기 제작에서 '기억과 경험'은 많은 도움될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이 전부는 아니다.
만일, 위의 5장의 카드에서 '헬리콥터'를 포함시킨 6장의 카드로 문제를 다시 낸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당황하며 이야기 만들기에 실패할까?
실험결과는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헬리콥터가 들어가더라도 헬리콥터를 통해 능숙하게 이야기를 지어냈다. 가령, '헬리곱터를 타고 가던 중 늑대 새끼를 발견하여 착지하던 중..', '숲 위에서 헬리콥터가 갑자기 줄어 들어 길을 잃고..'등.. 과 같은 또 다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창작해낸 것이다. 즉, 전혀 다른 카드가 섞이더라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치다 노부코'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창작하는 과정을 '경험의 해체와 재건을 통한 창조'라 정의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누구나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컨대, 이야기나 현실을 통해 체험한 것을 해체하고 단편화시킨 뒤, 그 단편들을 바꿔 늘어놓고 다시 의미를 붙이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우치다 노부코'는 이러한 인지능력이 5세 전후로 완성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보여줬다. 캐릭터가 그려진 카드나 인형을 갖고 싶어하는 어린아이의 욕망은 사실상 이야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싶은 욕망이며, 또 '역할 놀이'는 그것이 표출된 행위인 셈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특정 콘텐츠에 탐닉하는 마니아들은 단지 이런 욕망의 해체와 재구성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결론적으로 누구나 '해체와 재구성' 능력을 갖고 있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아 퇴화되었을 뿐이다.
| 이야기 체조 1 「카드 만들기」
위의 카드는 '오스카 에이지'가 「성흔의 조커」를 만들 때 사용한 24개의 키워드가 적혀 있는 카드들이다. 해당 카드를 조합해서 만들어 낸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어느 나라 왕의 몸에 새겨진 24개의 룰 문자는 왕이 죽자 사라졌고,
그 순간 24명의 젊은이의 몸에 성흔이 나타나게 된다.
단, 성흔이 거꾸로 나타나면 성흔이 의미하는 것과 반대의 능력을 갖게 된다.
실제 「성흔의 조커」가 유행하며, '행운'이란 '룬 문자'가 거꾸로 새겨진 캐릭터가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이와 같이 카드를 통해 줄거리를 생성한다면, 억지로 지어낸 느낌을 지울 수 있고, 또 무척 실천적이며 간단하게 플롯을 작성할 수 있게 된다. 방법 또한 무척 간단하다.
1) 카드를 뒤집어 적당히 섞는다.
2) 1장씩 총 6장의 카드를 뽑아 키워드가 보이도록 뒤집어 아래처럼 배열한다.
[**주의사항**]
[카드가 뒤집혀 있더라도(키워드가 거꾸로 나왔더라도)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배열함]
[타로카드를 사용해도 무방함]
3) 타로 카드로 점을 치듯, 배열된 카드들로 이야기 주인공의 운세를 점친다.
만일, 다음과 같은 카드가 나왔다고 해보자.
1. 주인공의 현재 - 공식
2. 주인공의 가까운 미래 - 서약
3. 주인공의 과거 - 성실
4. 조력자 - 해방
5. 적 - 조화
6. 결말 - 생명
첫번째 카드가 '공식'으로 나왔다면, 이는 주인공의 현재 상태를 말한다. '공식'이란 키워드는 교과서적이고 다소 딱딱한 느낌이므로 캐릭터는 '교과서'를 연상케 하는 인격을 가진 사람을 만든다. 가령, 그는 과거에 '성실'이란 상태에 있었으며, '서약'의 상태를 거쳐 마지막으로 '생명'의 상태에 도달한다는 식이다. 또, 그때 그를 도와주는 것은 '해방'과 관련된 사람 혹은 사건이며, 방해하는 것은 '조화'를 연상시키는 사람이나 사건이다. 위의 카드 사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카드로 만든 이야기 사례1]
부왕은 빈곤에 허덕이는 백성을 위해 이웃 나라를 침략하지만 도중에 전사한다.(→성실) 새로 즉위한 아들이 다시 한 번 백성을 구하기 위해 영토 확장에 나선다.(→공식) 나라가 혼란해질 것을 우려한 이웃 나라는 굳게 성문을 닫는다.(→조화) 싸움은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자유로운 상업을 바라는 상인들의 원조로 영토 확장에 성공한다.(→해방과 서약) 그후 온 나랑에 새로운 생명이 가득 태어난다.(→생명)
만일 카드가 아래와 같이 나왔다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설정할 수 있다.
1. 공식[역위치]
2. 선량
3. 지혜
4. 의사(병원 의사 아님, 의열의 지키는 충정)
5. 질서
6. 엄격[역위치]
[카드로 만든 이야기 사례2]
인공 마술로 만들어진 도둑 인형 마리아(→지혜.3번카드) 주인을 버리고 자신의 인공지능을 구사하여, 나쁜 관리들에게서 보물을 빼앗아 마을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있다.(→공식[역위치]1번카드) 하지만 어느 날, 협력해주던 소년 그룹에게 '도둑질은 그만해'라는 말을 하고, 고민 끝에 드디어 은퇴 표명(→선량.2번 카드) 마지막 타깃으로 선정한 것은 사리사욕을 채우던 국왕의 대관 도구 세트. 그러나 인형 헌터 맥더스 경관(→질서)이 쫓아와 망가지기 직전까지 위협한다. 하지만 협력자인 공주 자매(→의사)가 맥더스를 때려눕히고 그 틈에 대관 도구 세트를 손에 넣는다. 널브러져 있는 맥더스를 뒤로 한 채 마리아는 대관 도구 세트를 팔아 생긴 돈을 밤하늘에 뿌린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평온한 일상을 맞이한다(→엄격[역위치])
소설 지망생이 작성한 위의 플롯은, 주인공이 '지혜', 즉 "인공 마술'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아이디어가 좋다. 특히, 도입부는 항상 좋은 소재와 아이디어가 필요한 법인데 이를 잘 해결했다. 단, 원조자에서 등장한 '의사'카드는 약간 억지스럽다. 그러나 이 정도의 캐릭터 소설이라면 꽤 읽고 싶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어쨌든 카드를 이용한 이야기 재구성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카드에 표시된 키워드에서 "어떤 인물이나 사건이 연상되는가" 하는 점이 핵심이며, 대신 사전에 판타지라면 판타지. 연애물이라면 연애물이라고 이야기의 장르 정도는 결정해둔다면 좀더 빨리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다. 단, 반드시 주의해야 될 사항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다. 카드는 몇 번이나 다시 뽑아도 되지만 이야기를 좀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 카드의 키워드를 확인하며 재배열하는 것은 반칙이다.(절대 해서는 안 됨) 위의 방식에서 핵심은 카드 배열을 '운에 맡기는 것'이다.
'온고지신'
또, 위에서 자신만의 배열을 정해 새로운 카드 배열을 만들 수 있다. 가령, 아래는 위의 모델을 활용한 새로운 카드배열 구조이며, 중요한 것은 연습이다. 가령, 자신이 좋아하는 웹툰 작가들의 이야기를 카드로 재구성하며 구조를 분석해보자. 그러고나서 해당 구조에 자신의 스타일을 덧씌우다보면 '나만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아래는 기호학자 그레마스가 고안한 '행위자 모델'이며, 이는 이야기에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6명의 인물과 관계를 도식화한 것이다.
'그림6'에서 주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며, '대상'은 주인공이 손에 넣으려고 하는 존재이다. 만일, 판타지라면 마왕에게 납치된 공주를 말한다. 또, 조력자와 적은 주인공의 행동을 돕거나 방해하는 자이다. 그리고 '발신자'와 '수신자'는 주인공에게 공주를 어느 장소로 데려가라는 등.. 이를 명령하는 왕이며, 수신자는 공주를 기다리는 왕자, 등..과 같다. 따라서 주인공이 공주와 결혼한다면 주체와 수신자가 동일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한편, 자신만의 플롯을 생성한 뒤 숙달된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최소 100번 정도의 카드배열 연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플롯을 짜는 연습을 꾸준히 진행하며 각종 커뮤니티에 줄거리를 올려보거나 댓글을 달며 연습을 해보자. 이 연습이 바로 콘텐츠 작가의 근육 훈련이다.
| 이야기체조 2 「도작을 통한 플롯 만들기」
'도작'이란, 이야기의 표층을 제거하여 추상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가령, 민담의 표층(디테일)을 제거하여 추상화를 진행하다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나타난다.
1) 주인공의 부친은 그 사회나 집단의 권력자이다.
2) 주인공은 인간으로서 불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난다.
3) 그 이유는 부친이 자식의 능력을 두려워하거나 혹은 권력에 눈이 멀어,
제 3자로 하여금 자식의 능력을 빼앗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4) 주인공은 버림받는다.
5) 주인공이 태어난 장소로부터 먼 곳에 은둔해 살던 사람이 주인공을 키운다.
6) 주인공은 성장한 후 자신의 혈통을 알게 된다.
7) 빼앗긴 힘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가령, '마다라'와'도로로'의 이야기에서 구체성을 제거한 뒤, 추상화 과정을 거치면 위와 같은 문장들이 도출된다. 또, 위와 같은 방식으로 여러 이야기를 추상화하면 여러 이야기들의 표면적인 차이가 소멸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이야기의 '구조' 또는 '형태'라 한다. 유명한 웹툰 작가들의 이야기도 이렇게 도작&추상화하여 구조를 뽑아낼 수가 있다. 가령, 아래 3가지 민담은 얼핏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구조를 뽑아내면 결국 'A가 B에게 C를 준다'로 통합된다.
1) 지하세계에 떨어진 수첸코가 노인과 싸워 이겨서 부싯돌과 세 가지 털 실을 받는다. -러시아 민담-
2) 이반은 마법사 노인들에게 배를 얻는다 -러시아 민담-
3) 공주가 이반에게 반지를 준다 - 러시아 민담-
단, 구조를 뽑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다면, 프로프처럼 시간축이 기준이 되는 구조가 있고, 시간축을 배제한 구조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방식은 비슷하며, 도작의 기법을 자주 사용하여 결국 자신만의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 훈련이 중요하다. 그리고 훈련은 다음과 같이 하는 편이 좋다.
1) 특정 작품을 보며 매뉴얼 없이 이야기의 구조를 자력으로 파악한다.
2) 그 이야기를 구조 단계로 도작한다.
3) 해당 구조로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위의 단계를 반복함으로써 자신만의 구조를 만들 수 있고, 또 이야기 구조를 잘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
| 이야기체조 3 「이야기 기본요소인 '의뢰와 대행 모델」
지금까지 이야기의 구조를 발견하거나 만든 사람이 많은 가운데 '프로프'는 그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그가 발견한 마법민담의 구조는 아래와 같다.
1) 적
- 가해 행위
- 주인공과의 투쟁
- 추적
2) 증여자
- 마법도구를 양도할 준비
- 마법도구를 양도함
3) 조력자
- 주인공의 공간 이동
- 가해 혹은 결여의 회복
- 추적 도중에 구조 받음
- 난제 해결
- 주인공의 변신
4) 공주와 왕
- 난제 해결 요청
- 표식 부여
- 가짜 주인공 발각
- 진짜 주인공 인지
- 제 2의 적
- 결혼
5) 파견자
- 주인공의 파견
6) 주인공
- 탐색을 위한 출발
- 증여자의 시련에 부응
- 결혼
7) 가짜 주인공
- 탐색을 위한 출발
- 증여자의 시련에 응답(항상 부정적)
- 거짓 주장
'프로프'에 의하면, 마법민담이란 '7명의 등장인물로 구성된 이야기'다. 이 중에서 주인공에게 퀘스트를 부여하는 인물은 그 역할 하나만을 갖고 있다. 그래서 7명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마법민담을 정리한다면 '주인공'이 '파견자'에게 '공주'를 구출하거나 '왕'을 돕는 퀘스트를 받고, 또 '증여자'로부터 마법도구 그리고 '조력자'로부터 도움을 얻어 '적'을 쓰러뜨리고 '가짜 주인공'의 책략을 물리친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떤 이야기든 등장인물은 위의 행위자 모델 중, 어느 한 가지 혹은 몇 가지 역할을 동시에 담당한다고 일단 이해하는 편이 좋다. '발신자' '수신자'는 특정 종류의 스토리에서만 필요하기 때문에 카드 배치 도식에서는 빠졌지만, '하스미 시케히코'에 따르면 그 역할이 모험소설이나 탐정소설에 있어 오히려 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즉, 의뢰와 대행 모델은 좀더 깊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책에서는 구로사기 '시체 택배'와 행위자 모델에 관한 사례를 제시하며, 공식은 다음과 같다.
1) 주체: 탐정과 조수 혹은 용사와 용사의 무리 멤버
2) 조력자: 아이템(모험소설)이나 정보(탐정소설)를 제공해주는 등 특정 사건에만 등장하는 인물
3) 적 : 주인공의 목적을 방해하는 인물
4) 발신자 : 주인공에게 임무나 사건을 의뢰하는 인물
5) 대상 : 임무나 사건에 있어서 주인공이 찾아야 하는 대상
6) 수신자 : '대상'을 보내줘야 하는 상대.
공주나 주인공이 결혼하는 경우에는 1번 인물과 겹치기도 한다.
탐정소설에서는 4번 인물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바탕으로 행위자 모델을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ex. 구로사기 시체 택배]
1) 주체: 가라쓰 구로를 포함한 전 멤버
2) 조력자 : 사건의 해결에 도움을 주는 인물
3) 적 : 사건 해결을 방해하는 인물
4) 발신자 : 시체의 목소리(잔류사념)
5) 대상: 시체
6) 수신자 : 시체를 배달받을 상대
<행위자 모델로 만든 '손의 여자'>
여름방이 한창이던 어느 날, 숙부가 운영하는 해수욕장 휴게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가라쓰와 누마타, 마키노도 그들을 따라간다. 가라쓰는 관광객으로 붐비는 해안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마키노는 사촌동생인 초등학생과 바다에서 놀고 있다. 누마타는 인적이 드는 돌밭에 가 있다.또 시체를 찾고 있는 듯하다.
가라쓰가 뒷정리를 하고 있는 저녁 무렵에 돌아온 누마타는 웬일인지 약간 흥분한 모습이다. 일단 방으로 올라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누마타는 평소처럼 다우징으로 시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인적이 없는 돌밭에서 반응이 있어 살펴보니,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왼손(5 대상)이 포르말린으로 가득 찬 병에 담겨 있었다. 가라쓰가 말을 걸어보자 손밖에 없어서 그런지 확실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토막살해당한 자신의 몸을 찾아달라는 여성의 마음만은 느낄 수 있었다(4 발신자). 더 이상 손이 썩지 않도록 마키노가 처리를 하여, 희미하지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태를 유지했다.
호기심과 약지에 낀 비싸 보이는 반지의 위력에 무릎을 끓은 가라쓰와 누마타는 시체의 다른 부위를 찾아주기로 한다. 가라쓰와 누마타는 '손'의 희미한 목소리를 따라 차례차례 토막난 몸을 찾아내지만, 머리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머리는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그녀를 죽인 범인이 버릴 장소를 찾아 아직 갖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범인을 직접 찾을 수 밖에 없다.
실마리는 손의 지문이었다. 사사키에게 경시청 데이터 뱅크를 이용해 지문에 해당되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봐줄 것을 부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 사기 전과로 지문이 등록돼 있었다. 그렇게 시체의 신원과 결혼 사기 피해자의 신원을 알아냈다.
먼저 피해자 남성(2 조력자)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는 고등학교 생물교사로 매우 평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여자 이야기를 꺼내자 가라쓰와 누마타를 경찰이라고 착각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웃어 젖히며 자신의 컬렉션을 보여주는 남자. 생물 실험실에서 가라쓰와 누마타가 본 것은 자물쇠가 담긴 캐비닛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포르말린에 담긴 인체였다. 게다가 전부 여성의 신체였다. 손과 발은 물론 머리도 있었다. 그중에는 의뢰자 여성의 머리도 있었다.(6 수신자)
그때 남자(3 적)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그러나 의외로 약해빠져서 바로 제압당한다. 누마타가 발견한 왼손은 남자가 이 방에서 다른 여자를 죽이려고 했을 때 저항하는 여자에 의해 바깥으로 날아가 바다까지 흘러간 것이었다.
다음날 약지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팔러 갔지만 유리로 만들어진 이미테이션이었다.
여름방학에 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체를 찾는다는 서두 부분은 시체 찾기가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는 암시를 주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도입부이다. 또, 혼자서 묵묵히 돌밭에 나가 다우징을 하는 누마타의 모습은 코믹한 분위기로 캐릭터를 잘 살리고 있다. 전반적으로 '구로사기 시체 택배'이야기에서 '각 시체가 얼마나 재미있는 변사체인가 하는 부분'이 연출 요소의 하나가 되며, 해수욕장에 포르말린에 담긴 손이 떠내려 왔다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흥미를 가질 것이다. 즉, '주체 → 대상' 축은 누마타와 가라쓰가 그 손을 발견한 단계에서 이미 완벽하게 구성된다.
만일, 원래의 방식이었다면, 발신자가 확실한 상황이므로 시체는 자신을 죽인 범인에 대해 온갖 설명을 다 했어야 됐다. 그런데 해당 이야기에서는 발신자가 희미해진다. 토막 시체의 손이었기에 잔류사념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체가 말을 못하는 상황에서 '발신자 → 수신자' 축은 블랙박스가 돼 버렸다. 즉, 수신자에게 배달하기 위해서 수신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작례는 기존의 방식을 한번 꼬은 것으로 작가만의 창의적인 꽤 흥미로운 구성을 탄생시켰다.
게다가 위의 글은, '수신자-발신자' 축, 못지 않게 '적 - 조력자' 축도 특이한 장치가 있어야만 흥미롭다는 부분을 증명하고 있다. 조력자였던 생물 선생이 적으로 돌변해버린 것은 플롯 작성에 있어 상당히 고도의 기술을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행위자 모델을 뒤집어 엎는다는 아이디어를 살리고 싶었다면, 가라쓰와 누마타가 남자를 찾아간 이후, 한두 가지 에피소드를 추가해 남자가 조력자인 척 행동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아주 수상쩍은 인물이 가라쓰와 누마타 주변을 어슬렁거리게 해서 적인 것처럼 보여주며, 실은 그 인물이 남자의 범행을 눈치채고 저지하려던 인물이었다는 식으로 몰아간다면 적으로 보이던 인물과 조력자로 보이던 인물이 완전히 정반대 역할로 바뀌는 형태가 되어 플롯이 딱 맞어떨어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범인이었던 캐릭터가 조력자였고, 조력자로 보였던 캐릭터가 범인이 되는 흔한 미스터리물의 장치는 이와 같은 식으로 구성된다. 중요한 점은, 행위자 모델이란 방정식을 이리저리 다루다 보면 모험소설이나 미스터리의 각종 정석을 스스로 발견하고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 이야기체조 4 「무라카미 류의 소설 형태 분석」
이야기 구조를 비교적 쉽고 효율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작가를 꼽으라면 '무라카미 류'가 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기술이 어떻게 '분화'돼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장 큰 특징으로 '이야기'와 '세계관'의 분리를 찾을 수 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서는 '세계를 묘사하는 부분'과 '캐릭터와 관련된 스토리'가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 가령, 「기동전사 검담」을 예로 들자면, 지쿠와 지온의 대립 가운데 우주세기와 비우주세기로 나눠진 세계가 있으며, 지쿠와 지온이 대립하는 세계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은 정확히 그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그리고 건담과 같은 애니메이션은 세계관이 뚜렷하다. 덕분에 'MS83소대'나 '턴에이', '더블오', '시드', 등.. 각 역사적 사건들 사이에 스토리를 계속 제작할 수 있다. 즉, 건담은 세계관이 있었기에 2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 간혹, 세계관과 스토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해당 세계(세계관)와 각 스토리들은 별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특정 세계에서 창안된 각각의 스토리는 '취향'이며, 건담의 속편을 만들고 있는 작가들은 2차 창작으로서의 '취향'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취향'이란 마치 팬들이 노래방에서 2차 창작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예컨대, 세계관을 만들고 취향을 형성하는 가장 좋은 연습은 '특정 작가가 작성한 세계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만드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취향'을 만드는 데에는 남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관 속에서 '2차 창작'하는 방법이 가장 유용하다. 다만, '취향'만이 아니라 '세계'조차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소설가라고 할 수 없겠지만, '취향' 만드는 기술을 능숙하게 습득하여 어떤 '세계'건 가지고 놀 정도의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적어도 주니어소설 분야에서 일감이 끊길 일은 없다. 주니어 소설의 상당수는 타인이 고안한 '세계'를 토대로 만들어낸 '2차 창작'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시나리오 작가에게도 기존의 '세계'에서 '취향'을 발굴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저자는 이런 작가를 '블루칼라 이야기 작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세계관부터 만들어내는 화이트칼라가 더 훌륭한 작가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콘텐츠 산업이 커질수록 소설이나 만화, 게임 개발 공정의 일부를 확실하게 책임져주는 기술자가 필요해질 수밖에 없으며, 현재 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부족한 인재는 '이야기'를 담당하는 기술자이다.
** 훌륭한 작품의 '세계관'은 그 '세계관'을 토대로 성립되는 '이야기'를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소설 창작의 기술로서 '세계관'은 항상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이야기를 유발해야 한다.
| 이야기체조 5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 구조」
인간의 존재는 대개, 갔다 돌아오는 상황에 따라 결정난다. 유년 시절의 기억 속으로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여러 종류가 있지만,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단순히 몸을 움직여 갔다가 돌아오는 동작이 매우 많다.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의 핵심은 주인공이 이쪽과 저쪽을 왕복함으로써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내는 과정에 있다. 이 '왕복 운동'은 새로운 주체의 탄생 과정이 된다.
또,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의 핵심은 '성장'에 있다. 가령, 스티븐 킹의 단편 '스탠 바이 미'의 경우, 소년들이 숲속으로 시체를 찾으러 갔다 돌아오는데 말 그대로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여행을 통해 소년들은 유년기에서 벗어나게 되고, 훗날 소설가가 되는 화자 외 그들이 경멸하던 형들처럼 고향에서 주정뱅이 어른이 되거나 혹은 죽어버린다. 그러므로 작가는 주인공처럼 제대로 '어른'이 될 수 있었던 스토리 상의 '장치'를 반드시 찾아서 '갔다 돌아오는' 과정에 넣어야 한다. 해당 장치에 따라 소설의 방향과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 이야기체조 6 「노벨라이즈 연습하기」
쓰게 요시하루, 요시모토 바나나, 쓰게 요시하루(*)의 작품, '심심한 방'을 4백자 원고지 30매와 소설로 각색하는 작업을 해보자. 작법을 위해 노벨라이즈(만화를 소설로 풀어내기)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는 시각적 표현을 언어화하는 게 소설의 문장 기술을 늘리는 데 최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화건 영화든지간에 훌륭한 작품은 장면이 매우 효율적으로 구성된다. 하나의 컷 안에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이미 정리된 상태로 제시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머릿속으로 장면 하나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조합하는 건 쉽지 않다. 상당수의 작가 지망생들이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혹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는 게 소설 쓰기에 도움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tv드라마나 영화를 10분 정도 본 이후에 노벨라이즈 하는 편이 소설 쓰기 훈련에 훨씬 큰 도움이 된다.
'심심한 방'은 간단한 20페이지 단편 만화이다. 아내와 둘이 사는 '나'는 아내 몰래 원룸을 임대한 뒤, 옛날에 '기생집'이었다는 그 집에서 '나'는 별일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 비밀 공간의 존재를 금세 아내에게 들켜 버린다. 아내는 재미있어 하며 이런저런 물건을 갖다놓고.. 급기야 '나'의 어머니까지 데려다 놓는다. 그리하여 '심심한 방'에서 보내던 '나'의 비밀스런 시간은 깨끗하게 끝나버린다.
[작례 1]
고도성장기라고 불리던 시절, 나는 그럭저럭 산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고, 경기도 좋았고, 어떤 친구는 멋진 집을 지었다는 소문도 들린다. 뭔가 좋은 소식들도 들려왔다. 그때마다 나는 부러움과 박탈감을 누르며 예의상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정말 못 해먹겠다. 고도성장기라고 해도, 아무리 주변이 풍족해져도, 그 흐름을 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경기가 좋아봤자 내 책이 더 팔리는 것도 아니다.
데뷔 당시에는 아내 앞에서 어깨를 펼 수 있었지만, 데뷔 이후 원고청탁이 거의 없었다. 물론 편집자한테 독촉받는 일도 없다. 그저 멍하니 원고를 앞에 두고, 누구의 눈에도 들지 못할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요즘은 점점 지겹다. 정말 만화 그리는 일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편집자가 재촉하러 오는 일도 없었지만, 아내가 조용히 재촉하는 것이 몇 배나 더 괴로웠다. 결국 나는 도피처를 찾게 되었다.
"산보 다녀올게"
이것이 나의 핑계다. 산보라고 해도 정말 터벅터벅 걷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어차피 나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거겠지. 집 앞에 세워둔 자전거에 올라탔다.
나는 아내 몰래 방을 빌렸다. 조용한 주택가를 빠져나와, 아리카와 강가의 둑을 타고 가다가 건널목을 건너 길을 쭉 따라가면 그 집에 도착한다. 단순한 여정이다. 자전거로 10분 밖에 안 걸린다.
[작례 2]
"산보 다녀올게: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구겨진 와이셔츠와 수수한 바지를 입은, 실로 신통찮은 차림새의 남자다. 그리고 그것을 강조하듯 그 뒤에 서 있는 연립주택 역시 신통찮은 건물이었다. 벽은 베니어합판처럼 얇고 지붕은 함석판을 대충 얹어놓은 것 같았다. 1층 지붕엔 아무 의미없는 텅 빈 화분이 거꾸로 놓여 있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대로 놓여 있었지만 화분에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층에는 여자가 있다. 남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빨래를 개고 있다.
남자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차츰 바뀌는 풍경은 남자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다. 남자의 뇌리에 각인된 기억의 일부일 뿐이다. 남자는 빨래를 개던 여자, 그러니깐 아내 몰래 방을 빌렸다. 남자에게는 별일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딱히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갖다 붙일 만한 이유가 몇 가지 있긴 했지만,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변덕이라고 해두자. 이것도 나중에 갖다 붙인 이유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히 그렇다.
남자가 탄 자전거 옆으로 전차가 달리고 있다. 남자는 잠시 멈추고 전차가 달리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본다. 전차의 엄청난 굉음에 이미 익숙했기에 심심한 방으로 향하는 심심한 길, 남자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똑같은 만화를 노벨라이즈 하더라도 위와 같이 '1인칭' 혹은 '3인칭'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그런데 대부분은 1인칭에 익숙하기에 계속 관찰해야하는 3인칭보다는 1인칭에 강한 것이다. ('나'에 대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말이 많아진다) 반면, 3인칭 시점을 선택한다면,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동시에 어떻게든 그 안에 '내면'을 집어넣고자 고민해야 한다. 그러므로 3인칭 시점에서는 '풍경 묘사'와 '내면 묘사'를 조합하는 방식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우수한 문장 표현을 자연스럽게 연습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3인칭이 '노벨라이즈' 연습에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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