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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소설 쓰는 법(3) [오스카 에이지.2005,2013]

by 도양강 2018. 10. 19.

캐릭터 소설 쓰는 법(3) [오스카 에이지.2005,2013]



캐릭터소설쓰는법 ::5 열린 결말


캐릭터는 어느 순간부터 제 멋대로 움직인다. 결말을 정해놓고 소설을 작성하더라도 결말 그대로 이어가는 경우는 없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도중, 어느 순간부터 캐릭터는 제멋대로(알아서) 움직인다. 우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다. 이는 초보자가 제일 먼저 익혀야 할 기술이다. 지난 포스팅에서 설명한 분야지만, 이야기 구성은 탄탄할수록 좋다. 효과적인 구성을 만들기 위해서 카드와 플롯을 준비한다.   



1) 정보카드 (엽서크기)

2) 400~800자 정도의 플롯



'이야기 체조' 1장을 참고하자. 타로카드를 이용해 단시간에 플롯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해설되어 있다. 이야기 체조 1장의 플롯 만들기는 소설 만들기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1순위의 업무와 같은 것이다. 세부사항은 어떻게 수정하건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일은, 일단 문장으로 옮기는 . 아래는 '이야기 체조'의 1장의 방식대로 '눈동자 색깔이 다른 캐릭터'로 플롯(800자 정도)을 작성한 예시자료이다.



[플롯 예시]


여고생 구니에다 가오리는 약국에서 꽃가루 알러지를 치료하는 안약을 산다. 하지만 그 약을 넣은 다음부터 어렴풋이 다른 사람의 감정이 보이게 된다. 처음에는 흐리게 보이던 것이 차츰 가정 이외의 것까지 왼쪽 눈으로 보게 된다. 갈수록 눈동자 색깔이 옅어진다. 


그 무렵 주위에서도 가오리의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주위 사람들을 가오리를 멀리한다. 고립되어가는 가오리. 그러던 어느 날 가오리는 자기처럼 좌우의 눈동자 색깔이 다른 소년이 양복 차림의 남자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하지만 소년의 감정에서는 악의를 느낄 수 없다. 


가오리를 본 소년은 총을 넣은 후 다가온다. 소년은 가오리에게 아소 레이지로라고 이름을 밝히고 목격한 이상 같이 가야겠다고 말한다. 가오리는 반강제적으로 끌려간다. 끌려간 곳은 지하 아지트다. 거기에는 가오리처럼 좌우의 눈동자 색깔이 다른 인간들이 모여 있다. 거기에서 가오리는, 약국에서 산 안약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변했다는 걸 알게 된다. 안약을 만든 회사는 유령 회사로 일본을 지배하려는 조직이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실수로 안약을 넣는 바람에 조직으로부터 쫓기는 신세라고 한다. 머지않아 가오리도 쫓기는 몸이 될 거라는 말을 듣고 그곳에 머물기로 한다. 


그 와중에 수면 아래에서는 조직과의 투쟁이 시작되고, 도중에 가오리는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게 된다. 아소 무리들이야말로 일본을 지배하려는 음모의 조직이었다. 안약에 약물을 탄 것도 아소의 짓으로 안약 회사는 오히려 그걸 저지하는 쪽이었다. 


화가 난 나머지 아소를 쏘는 가오리. 가오리도 아소의 총에 맞아 왼쪽 눈을 다친다. 아소는 죽지만 가오리는 목숨을 건진다. 그 대신 왼쪽 눈은 실명한다. 가오리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상으로 돌아간다.    



플롯을 작성했다면, 카드에 '장면'을 기록한다

우선 위의 플롯에서 제일 첫 장면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위의 플롯에서 첫 장면은 '약국에서 약을 산다'가 나올 수 있다. 카드 위에 '장면 1 곳 ---약국'이라 기록한다. 다음은 꽃가루 알러지 약을 사는 3월 중순이 알맞다. 주인공인 구니에다 가오리는 약을 사러, 방과 후 약국에 들렀을 것이다. 따라서 둘째 줄에는 '때 - 3월 중순 어느 날 방과 후'라고 기록한다. 가오리가 약을 살 때, 약국 점원은 조직원일 수도 있다. 해당 부분은 '나중에 스토리와 관련 있는 인물'이라 설정하자. 


카드 셋째 줄에는 '등장인물 1) 구니에다 가오리 2) 점원'이라 적는다. 이 장면에서 가오리를 중심으로 전개할 건 그녀가 안약을 사고 그 자리에서 안약을 넣는 연기이다. 넷째 줄에 다음과 같이 작성한다. 


플롯 1)-구니에다 가오리는 새로 생긴 약국을 보고 요즘 들어 꽃가루 알러지가 심해졌다는 생각에 안약을 사러 들어간다. 점원이 권하는 안약을 구입해 그 자리에서 넣고 밖으로 나온다. 여기서 '새로 생긴 약국'이란, 점원이 조직원이라는 걸 암시하는 설정이다. 따라서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이 기입한다. 


'복선 --점원은 조직의 연구원이다'  


시나리오 전개상, 의문의 조직이 만든 안약이므로 낯선 제약회사의 안약이라고 기록하자.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안약이므로 하트 모양 안에 눈동자가 그려져 있는 상표를 붙인다. 카드 마지막에는 '독자에게 전달할 정보 -- 안약에 붙어 있는 의문의 상표'를 적는다. 


위와 같이 설정하면 아래와 같은 카드가 완성된다.



[ 장면 1 ]


  -- 약국

 

  -- 3월 중순 어느날 방과 후


 등장인물 -- 1) 구니에다 가오리 2) 점원


 플롯 -- 1) 구니에다 가오리는 새로 생긴 약국을 보고 요즘 들어 꽃가루 알러지가 심해졌다는 

               생각에 안약을 사러 들어간다. 점원이 권하는 안약을 구입해 그 자리에서 넣고 

               밖으로 나온다.


 복선 --- 점원은 조직의 연구원이다.


 독자에게 전할 정보 -- 안약에 붙어 있는 의문의 상표


 


이제 시간축을 따라 번호를 매긴다. 


다음 장면은 "어렴풋이 사람들의 감정이 보이게 된다"는 대목이다. 약국을 나와 누군가를 만났다고 하자. 옆집 아줌마라고 하면 어떨까.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했으니 갑자기 아줌마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됐다고 하자. 무얼 읽었을까? 아직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지게 됐는지 모르므로 신기한 일이 생겼다는 정도가 좋을 수 있다. 두 번째 카드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장면 2 ]

  -- 상점가 

 

  -- 장면1의 직후(해질 무렵)


 등장인물 --1) 구니에다 가오리 2) 옆집 아줌마


 플롯 2)  


 약국을 나온 가오리는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점가를 지나다 옆집 아줌마를 만난다. 

 무슨 영문인지 가오리는 아줌마가 오늘 저녁엔 카레라이스를 만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묻는다. 

 아줌마는 "장바구니에 들어 있는 양파랑 당근을 보고 알았구나"라고 말한다. 


 복선 -- 가오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본인도 상대방도 아직은 모르고 있다. 


 독자에게 전할 정보 -- 어디까지나 장면 2에서는 이상한 일이 발생한 정도로 마무리하고, '마음을 읽을 수 있

                              다'는 정보는 독자들이 모르게 한다. 



이런 식으로 작중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장면별로 차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작성한다. 


장면 번호는 반드시 시간축을 따라 매긴다. 가령, 가오리가 <장면2> 뒤에 노상에서 문득 떠올린 초등학생 시절의 에피소드를 쓴다고 한다면,  '[장면 3]곳 -- 상점가 / 때 -- [장면2] 다음'이라고 절대로 쓰면 안 된다. 초등학생 시절이므로 시간축에 따르면 <장면1>앞에 와야 한다. 그러므로 초등학교 때의 장면이 [장면 1]이 된다. 뭔가 이상한 어릴적 체험을 쓰고자 한다면 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장면 3]

  -- 초등학교 교실


  -- 6년 전(가오리가 초등학생 시절)


 등장인물 -- 1) 구니에다 가오리 2) 옆자리 소녀



약국이었던 <장면1>은 이제 <장면2>가 된다. 만일 특정 장소와 맞는 캐릭터와 연관된 '장면'을 만들기  힘들다면, 우선 카드에 <임시>라고 작성한다. <장면5>뒤에 오는 장면에 꼭 넣고 싶은 멋진 대사가 있는데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난다면 <장면6>이라고 카드 첫줄에 쓰고 그 대사만 적어두는 식이다. 이렇게 한다면, 플롯 마지막 장면까지 다 쓰고 나면 군데군데 마저 채우지 못한 카드도 있겠지만 일단 몇십 장의 장면 카드가 만들어진다. 



<카드 점검하기>


이제 카드를 훝어보면서 아래 사항을 점검한다. 


1) 같은 장소가 반복해서 나오진 않는가? 특정 효과를 노려 의도적으로 반복한 게 아니라면 주인공들이 연기하는 장소에 변화를 주자. 스토리의 단조로움이 상당 부분 해결된다.


2) 너무 길어서 두 장면 이상으로 나눠야 하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어느 한 쪽이 불필요하지는 않는가? 장면을 늘이거나 줄이자.


3) 앞 장면에서 깔아놓은 복선을 밝히는 장면은 준비되어 있는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어느 장면에 넣거나 장면을 새로 만들자. 또는 애초에 그 복선은 필요없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자.


4) 독자에게 전할 정보가 하나도 없는 장면은 없는가? 가령 주인공이 지닌 초능력의 위력을 보인다는 목적으로 액션 장면이 여러 번 나올 경우도 '전할 정보'가 더 없는지 스스로 의심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이 점검하여 카드의 장수를 조절한다. 이처럼 큰 흐름대로 진행하다보면 비워둔 곳도 하나둘 채워진다. 이 작업이 어느 정도 진전이 되면 시간축에 따랏던 장면을 재배열한다. 초등학교 장면은 첫 장면이 아니라 <장면 3> 뒤에 회상으로 넣는다든지 과감하게 절정 장면을 머리 부분으로 가져와 독자에게 보여주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전개하면 어떨지 등 연출 계획에 따라 장면을 재배열한다. 카드를 만들다 떠오로는 대사나 소품 같은 것이 있으면 그것도 해당 카드에 적어둔다. 


이런 작업 과정을 '스토리 편집'이라 부른다. 작가들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매회 스토리를 만든다. 소소한 발상이나 연출 방법, 키워드, 좋은 대사, 전회에 이은 복선 등 1회 방영분 스토리가 완성되기 전 단계의 '조각'들을 회의실 화이트 보드에 나열한다. 스토리 에디터는 그런 조각을 제작자, 감독, 시나리오 작가들의 지시에 따라 이야기가 되게끔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스토리 에디터의 능력은 곧 작품의 완성도와 직결된다. 


가령 디즈니 같은 경우, 컷 단위로 철저하게 회의를 해서 스토리를 구성한다. 엽서 카드 크기의 종이에 컷 단위의 일러스트를 그려 한 벽면 가득 붙여놓고 검토한다. 한 장의 카드에 하나의 항목을 기입한 후 이리저리 배열을 바꿔 하나의 짜임새 있는 흐름을 만드는 방식은 논문을 작성할 때도 사용하는 방법이다. 단, 작가의 경우, 여러장의 카드를 만들어 여행을 하며 기록했다가 나중에 조합을 하면서 사색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순서대로 정리된 카드를 보며 자료를 배치하기만 하면 한편의 책이나 논문이 나온다. 



스토리 편집을 잘 하려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카드로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다.


카드 만들기는 실제로 해보면 어렵다. 연습이 필요하다. 이때는 좋아하는 단편 소설을 하나 하나 장면으로 만들어 카드로 조립해보자. 한권의 소설에 카드가 몇장 나올지도 알 수 있고,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힘을 발견할 수 있다. 혹시 프로의 작품이더라도 카드의 짜임새가 엉망이라면 스스로 새로운 방법으로 재배열 해보자. 여기서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지적보다는 재미에 초점을 맞추자.


누구든 남의 결점을 찾아내 지적하는 건 잘한다. 그런데 지적이나 하는 것은 '평론'이 아니다. 비록 이야기 구성은 엉성할지라도 독자들이 읽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프로이며, 핵심 역량이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은 절대 '이야기가 엉망이다'라느니 하며 잘난 척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보고 배워서는 안 된다. 남의 작품의 '결점'은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는 데만 활용할 일이다. 이야기 구성을 치밀하게 설계해서 쓴다고해서 다 재미있는가 하면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야기는 일직선이 아니다. 구성을 그렇게 짜임새 있도록 만든다고 해서 일직선을 향해 나아가는 소설은 거의 없다. 신세계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말한 가능세계, 현실은 우연이 만들어 낸 결과로 '지금'이며, 다른 '지금'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소설의 구성은 선택에 선택을 거듭하여 일직선이 아닌 수많은 '지금'을 만들어내며 캐릭터가 제멋대로 움직인다. 장면마다 여러 갈래로 나눠지고, 캐릭터는 이에 따라 움직이면서 무수히 많은 새로운 결말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소설쓰기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