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경제일반

자본주의 미래보고서 [마루야마 슌이치. 2018]

by 도양강 2019. 10. 28.

| 기술혁신의 본질

AI, 데이터, 로봇으로 인한 기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생산성 과장'이란 주제가 불붙고 있다. 우선 과거에 비해 기술혁신의 속도는 분명 빨라졌다. 문제는 그만큼(기술 발전속도) 생산성이 크게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실리콘밸리의 경우, 혁신적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신생기업들이 늘었음에도 결국 이들의 종착지는 '광고수익'일 경우가 많다. 물론, 효율적인 '광고 시스템'은 바람직한 비즈니스 모델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중요도를 생각한다면, 전기나 의복, 음·식료품 등.. 과는 비교할 수 없다. 광고는 언제까지나 목적 달성의 수단에 불과할 뿐, 경제의 핵심 요소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광고 비즈니스 모델은 경제를 추동할 수는 있지만 핵심은 될 수 없다. 

게다가 광고 수입의 출처는 모두 다른 기업의 호주머니이며, 그 결과 광고 비즈니스 모델에 모두가 매달릴수록 전체 생산성은 오히려 줄어든다. 결국, 문제는 생산성의 성격인데, 물류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근본적인 생활과 관련된 기술혁신(전기,DNA)은 크게 변화가 없다. 물론, '생산과 연관된 기술혁신'은 상당히 중요하다. 단, 생산성에서 새로운 분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인간의 행복도는 기술발전 속도와 반비례하게 된다. 생산과 연계된 혁신이 없는 상태에서 회전속도(디지털 기술)만 증가하다보면, 기계나 소프트웨어보다 빠를 수 없는 사람들의 일자리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과거에 비해 혁신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혁신의 내용은 느려졌다. 가령, 5G통신망이 과거 '전기'의 발견이나 심지어 '냉장고 개발'과 같은 혁신보다 인류에 더 혁신적일까? 혁신이 아니라 속도만 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앞으로는 혁신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조금 줄이는 방법이 혁신이 될 수도 있다. 원래 95점에서 1점 올리기가 어렵고, 혁신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스티글리츠 교수는 단순히 속도를 개선하고 광고 비즈니스를 목표로 하는 기술발전만으로 미래 자본주의를 더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분야는 생산성 혁신이 기술과 결합되어야만 현재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하며 발전할 수 있다. 또, 이에 관한 토마스 세들라체크의 주장은 좀더 흥미롭다.

 

 

 

 

 


| 토마스 셰들라체크

토마스 세들라체크는 24세의 나이로 체코의 초대 대통령 경제자문을 역임했으며, 체코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2011년, 셰들라체크는 '유럽을 이끄는 젊은 리더 40인'에 선정되며 '선악의 경제학'은 2012년 독일에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세들라체크는 '세계적인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 이유를 케인스가 예로 든 '미인대회 투표'이야기로 설명한다. 

 

'미인대회 우승자를 맞힌 사람에게는 상금이 주어진다'

 

만일, 미인대회 우승자를 맞히려면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미인을 뽑아야 할까? 결론적으로 '우승자 맞추기' 미인대회라면, 미인들은 중요치않다. 왜냐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A가 있더라도 심사위원들이 대부분이 C를 선택해버리면, 우승은 C가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인대회 상금을 받으려면, 자기 취향이 아니라 다른 사람(심사위원들)의 취향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셰들라체크에 의하면, '미인대회 우승자 상금 일화'에 자본주의가 불황과 호황을 오고가는 원리와 주식 시장의 본질이 담겨있다. 가령, 주식 시장에서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미인대회의 승자처럼 행동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기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기업에 '투표'해야 상금을 받는다. 그런데 눈치싸움이 심각하다면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여성(기업)이 우승할 수도 있는데, 이와 같은 눈치보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 약점이자 모순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와 관계없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상황에 따라 원래의 가치보다 오버슈팅(거품) 혹은 언더슈팅, 즉 '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가치와 별도로 현상이나 흐름 역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또 이렇게 왜곡된 체계가 과도하게 발생할수록 대규모 저항을 불러오기도 한다. 셰들라체크는 '눈치보기 투기심리'의 모순된 본질을 '미인대회 우승자' 이야기로 지적했다. 

 

 

 

 

 

 


| 파라오와 거시경제


이집트의 파라오가 어떤 꿈을 꿨더니, 꿈에서 살찐 소 일곱 마리와 비쩍 마른 소 일곱 마리가 나왔다. 무슨 꿈인지 해석할 수 없었던 파라오는 유대인 예언자 요셉을 불러 꿈의 의미를 물었다.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7년간의 풍작 뒤에 7년간의 기근이 찾아올 것입니다"

 

파라오는 7년간의 기근에 대한 대책을 요셉에게 물었고, 요셉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풍작한 해에 수확한 것을 모두 소비하지 말고 저장해 두면 됩니다"

 

파라오는 요셉의 조언에 따랐고, 마침내 기근이 찾아왔을 때 창고 가득히 쌓여 있던 곡물 덕분에 이집트는 곤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위의 일화에서 파라오가 꾼 꿈은 인류 최초의 거시경제 예측이다. 항상 맑은 날만 지속되면 생명이 살 수 없듯, 경기역시 자연현상처럼 오르락내리락 변동을 반복한다. 영원한 성장이 있을 수 없고, 또 영원히 떨어질 수도 없다. 하지만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은 '영원한 성장'을 기초로 설계하고 있다. 각 국가마다 '계속된 성장'을 전제로 경제 활동을 하고 정책을 세운다. 경제는 당연히 때에 따라 성장과 후퇴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데 사회 모델이나 연금 모델 그리고 은행 업무까지도 모두 '경제성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마치 '경제는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라는 신화가 DNA에 새겨져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어떤 사회도 영구적으로 계속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는 마치 바다처럼 때에 따라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이를 '회전목마 위기'라 하는데,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는 영국이 유럽 경제의 '암'이었고, 15년 전에는 '독일' 그리고 2010년에는 그리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과거 1991년에는 소련이 붕괴되며 핀란드가 유럽의 '암'이 되어 수많은 고학력 젊은이들이 직장을 잃었다.

 

호황과 불황이 어느 한 국가에만 머무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모두 화창한 날씨를 꿈꾸지만 살다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즉, 자본주의가 믿고 있는 '계속된 성장'은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다. 예컨대, 아이는 성장하지만 어른은 성장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만일 어른을 억지로 성장시키려 한다면 키가 자라는 게 아니라 살만 찔 뿐인데, 여기에 성장호르몬까지 주입하다보면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파멸에 도달한다. 

 

OECD선진국을 중심으로 여전히 물질적 성장이 당연한 것처럼 사회통념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는 왜곡된 신화에 불과하다.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라면, 지금쯤 '우리 경제는 언제까지나 아이의 상태인 걸까?'라는 질문을 던질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

 

 

 

 

 


| 장기 저성장에 대비하라

파라오가 요셉의 대책에 동의했듯, 자본주의를 지속시키기 위한 방안은 '저성장 정책'을 준비하고, 하강국면을 대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성장 자본주의'에 심취해 있다. 가령, 성장 자본주의를 '자동차'를 빗대어 생각해보자.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스펙이 엔진 그리고 속도라면, 최고속도가 가장 높은 차가 최고의 자동차일까? 물론, 최고속도(자본주의:성장)는 자동차 스펙에서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상황 혹은 사람마다 자동차에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혹자는 브레이크와 같은 안전요소가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고, 또 '연비'나 '승차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역시 자동차처럼, '성장(최고속도,마력)'이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 

 

한편, 세들라체크는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써 '자유'를 꼽았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곳을 여행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을 사용하기 위함일까?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결국 '좋은 느낌', '안정감', '소속감' 등과 같은 '감정변화'와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감정변화'를 위해 우리는 매일 돈을 번다. 그리고 「자유로움」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한 감정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도 사회 구성원들의 긍정적인 감정변화를 위해서이다. 우리는 왜 그토록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 노력했는가? 선진국의 사회시스템이 주는 만족도가 개발도상국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만일, '자유'를 자본주의라는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면, 저성장 정책 역시 필요하다. 어차피 경기흐름은 반복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사람들의 '행복'이다. 파라오 이야기처럼 침체와 저성장 역시 피할 수 없는 당연한 부분으로 인식한다면 경기침체에 대비할 수 있고, 행복도의 총량은 유지된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행복도는 높아지지 않는 이유는 침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각 국가마다 저성장 정책을 준비해야 하고, 저성장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경제가 이미 성인이 되었음에도 성장 촉진제를 찾아서는 안 된다. 이보다는 유지할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적 성장의 종착점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세들라체크-

 

서점에는 늘 불황에 관련된 도서가 넘쳐난다. 그리고 불황에 관련된 도서들은 저마다 '호황'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주장한다. 또, 정부는 국가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이론과 경험이라면, 항상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반면, '경기 억제'에 대한 논의는 거론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책도 별로 없다. 어느 분야건 성장률이 지나치면 반드시 불황이 찾아오고, 이에 대비하여 축적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주변에는 온통 끝없는 성장해법으로 넘쳐난다. 

 

세들라체크가 주장하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의인화하면 '식욕부진'이다. 공산주의는 공급부족으로 소멸됐고, 자본주의는 남아도는 음식들에 비해 식욕부진이 원인이 되어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식욕부진'에 대한 대책으로써 새로운 음식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방법만이 정답일까? 일단, 세들라체크가 내어놓은 해법은 '3끼를 2끼로 줄이면 된다'는 주장이다.(이 역시 문제가 있어보인다) 이론상, 음식이 남아돌고 있는데 식욕이 부족한 점이 문제라면, 요리를 잠시 그만두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 '발전하지 못하면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혹은 '성장하지 못하면 바람직한 경제가 아니다'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 금리는 음주다

세들라체크는 '금리'를 '음주'에 비유한다. 그리고 이자는 숙취다. 단언컨대, 술을 마셔도 숙취가 생기지 않는 어떠한 방법도 결코 술을 마시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가령, 제로금리가 되어 싸게 돈을 빌려 GDP를 성장시키더라도 빚은 언젠가 반드시 갚아야 한다. 금리를 활용해서 아무리 바람직한 투자를 하더라도 어김없이 숙취는 찾아온다. 그래서 경제가 차입금이라는 마약에 한 번 의존하게 되면, 멈출 수 없게 된다. 심지어 이 마약은 경제의 성격까지 바꿔 놓는다. 낮은 금리나 제로금리가 지속되면 GDP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냉동 창고 안에 있는 사람의 체온을 측정해서 그 사람의 건강 상태가 정상인지 아닌지 진단하는 행위나 같다. 또, 재정 적자가 GDP 성장률의 세 배가 넘어간다면, 이 역시 성장률이 더이상 의미가 없는 상태다.

 

만일, 재정 적자가 GDP의 3퍼센트이며 GDP성장률이 1퍼센트라면, 1퍼센트의 성장을 3퍼센트의 차입금으로 산 것과 같다. 이런 성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는, 은행에서 100억을 빌려 자신이 100억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즉, GDP는 신성하고 견고한 수치처럼 보이지만 사실 손쉽게 조작할 수 있다. 

 


금요일 밤이 아무리 즐거워도 숙취는 다음날 어김없이 찾아온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바람직한 투자라도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차입금으로 쌓아 올린 부는 모두 빚더미에 불과하다


경제 위기는 반드시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겨울은 온다'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순환은 자연현상처럼 반복되는 것이며, 경기순환은 일시적인 트랜드가 아닌 법칙이다. 이를 한쪽 면만 바라보게 되는 것은 인간의 욕구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라오처럼 붕괴 위기에 맞춰 저성장에 대비한 전략을 미리 준비한 자만이 내일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