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역사소설

「오다 노부나가 3편:: 떠오르는 별」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 이길진 옮김 | 솔 | 2016

by 도양강 2018. 12. 13.

전무(無) 혹은 전부


분명히 도키치로의 말처럼 종래의 병법이나 전술로 대항하면 천에 하나도 승산이 없다
그러나 전혀 다른 전법으로... 라는 쪽으로 생각을 돌리면 승산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근성을 발휘할 때다. 노부나가! 너는 생사를 걸고 새로운 전법을 연구해야 한다


노부나가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2만 병력을 2천 군사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2천명으로 2만명을 상대하려면 1인당 10명을 제압해야 한다. 1 : 2도 아닌 1 : 10으로 공세를 취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상대는 훈련이 잘 된 명문 '스루가'의 병사들이었다. 

 

소설임을 감안해야겠지만, 노부나가의 '노부시 전략'은 '노히메(노부나가 부인)'의 말에서 시작되었다. 노부나가는 요시모토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수수끼끼 형식으로 노히메에게 질문했다. 노히메는 '만취한 사람 10명이라면 1명이 이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에 노부나가는 그 특유의 번뜩임으로 노히메의 대답을 응용했다. 노부나가의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1] 목표를 확실하게 정한다.
2] 목표와 관련한 정석적인 방법을 양껏 정리한다. 
3] 정석적인 방법에서 하나씩 틀을 깬다. 
4] 실체(본질)를 파악하고, 기이한 방법으로 실체를 숨긴다. 
5] 때가 왔을 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노부나가는 새로운 전법을 구상할 때, 최대한 열린 자세를 보였다. 오직 목표달성에만 집중하며, 그 외의 어떠한 것(신분과 계급, 성별과 나이, 등..)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목표에 합당한 정보라면 형식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쟁자보다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요시모토에 대응하는 노부나가의 구체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문제(상대)의 실체를 파악한다.
둘째, 구체적인 목표를 정한다.
셋째, 평범한 방법(허수)을 모조리 찾아 기록한다.
넷째, 정보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될수 있는 한 모든 분야에서 관련 정보를 받아들인다.
다섯째, 틀을 깬 가설을 가능한 많이 도출한다.
여섯째, 실체에 가장 근접한 가설을 선택한다.
일곱째, 자신의 의도를 숨길수 있는 '허수'를 상대에게 보여준다.(세상에 던진다)
여덟째, 자신의 뜻을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사람들과 무기를 비밀리에 확보) 
아홉째,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허수'를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열번째,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독수'를 미리 준비해놓고, 물밑에서 상대보다 더 빨리 움직인다.
열한번째, 최선을 다해 실행에 옮긴 뒤 바로 다음 전략을 준비한다.


 

 

 

 

 


바보와 천재사이

 

천하를 손에 넣을 것인가, 오와리의 큰 멍청이로 끝날 것인가

 

너무 큰 뜻은 보기에 따라 바보처럼 보이는 법이다. 일반 상식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노부나가가 치밀하게 생각하여 사용했던 전략은 보기에 따라 멍청이처럼 보였다. 노부나가의 생각과 행동은 일반적인 상식과 크게 벗어나 앞서가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전략을 예사롭지 않게 생각한 이들은 소수였을 뿐,(나미타로, 히데요시) 눈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노부나가의 모습은 흡사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라는 거인과 일생일대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지만 노부나가는 태연하게 낮잠을 잤고, 농성타령이나 하며 된장을 준비하라며 지시했다.  

 


노부시와의 연계
농성의 위장
농민의 이용


 

아군보다 10배가 많은 적을 맞이한 노부나가의 전략은 상식과 동떨어져야만 승산이 있었다. 그래서 오직 기병에만 승부를 건 '노부시 전략'을 택했고, 이는 전에 없는 새로운 전법이었기에 노부나가는 정신나간 성주처럼 보였다. 

 


노부나가 : 명령이 내릴 때까지 모두 깃발은 감추도록 하라.

다이시가네까지는 은밀히 접근해야 한다. 
명성을 날리고 가문을 일으키는 일은 이 싸움 하나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개인의 공을 앞세워 전군의 승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요시모토를 제외하고는 굳이 목을 베려 하지 마라. 
무거운 머리를 들고 다니느라 소중한 총대장을 놓친다는 것은, 이 오다 가즈사노스케의 전법에는 없는 일이다.


 

 

노부나가의 출사표는 간결하고 비장했다. 기존 방식을 초월해야만하는 상황을 언어로 설명하기에는 벅찼다. 이천 명으로 이만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정석적인 전술은 없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생각은 달랐다. 결론적으로 2,000명으로 20,000을 상대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즉, 천명이 요시모토(총대장) 1명의 목을 향해 돌진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질주하는 천명과 한명이 싸우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승패가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노부나가가 제시한 '미끼'는 제대로 작용했다. 초반 승리로 긴장이 풀린 요시모토는 노부시들이 가져다 준 술에 취해, 스스로 무장을 풀어버렸다. 이는 노부나가가 간절히 바라던 '천명 VS 한명'의 싸움이었고, 요시모토 스스로 노부나가의 함정에 들어가버린 셈이었다. 기회를 잡은 노부나가는 질풍처럼 내달렸고, 요시모토는 적군이 쳐들어 온 것도 알지 못한 채, 덴가쿠 골짜기에서 순식간에 목이 떨어졌다. 

 

 

 

 

 


승리와 패배 사이의 자만

문자로 전쟁을 배운 요시모토는 교과서처럼 행동했다. 전장에서 가마를 타고 다녔으며, 초반 승리에 방심한 나머지 이겼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자만한 나머지 오타카 성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게다가 고작 1만 5~6천 평에 불과한 작은 분지에 야영을 하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결국, 요시모토는 평소 자랑하던 자신의 명검 '와키자시'를 반나절 만에 노부나가에게 넘겨줬다 (소조사몬지)

 


노히메 : 싸움에는 승리가 아니면 패배밖에 없어요. 
이겼다고 해서 자만하면 안 되고 졌다고 해서 흔들려도 안 되요


 

위의 문장은 흥망성쇠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이유가 묻어있다. 인간은 감정에 따라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전쟁터의 상황은 냉정하다. 단지 결과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쉽게 감정에 좌우되는 사람은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으며 리더로써 자격이 없다. 전쟁에서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준비'다. 리더는 승패와 무관하게 다음 수를 내다본 뒤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현대사회 역시 전쟁터다. 따라서 승패에 관계없이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노부나가처럼 승패와 무관한 자세가 중요하며, 늘 다음 일을 차분하게 생각해야 한다. 승패는 방심과 준비에 따라 움직인다. 

 

 

 

 

 


노부나가식 협상


노부나가: 닥쳐! 이 노부나가는 요시테루의 가신이 아니야. 
배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물인지 시험하려는 것이다. 
내일 가겠다고 해놓고 오늘 찾아간다..
여기에 훌륭히 대응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볼 것이다. 

싸움에서는 오늘내일의 구별이 없어. 
잠깐 시험해보려고 가는 것뿐인데 배알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하지 마라. 

서둘러라. 같은 아침이라도 이를수록 좋다. 
정신을 차리고 있는 눈인지 아직 잠에서 덜 깬 얼굴인지, 일본을 위해 이 노부가가가 확인하려는 것이다


 

노부나가의 철학은 사소한 만남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전쟁터에서는 '오늘내일의 구별이 없다'는 그의 말은 자신이 왜 난세의 영웅인지를 보여준다. 사람은 대개 긴장이 풀어졌을 때 본심이 나오는 법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찰나의 순간을 관찰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가령, 약속된 만남보다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눴던 짧은 대화에서 그 사람의 인성이 드러날 수 있다.

요시테루는 일본의 13대 쇼군이었고, 무예를 중시하던 인물이었다. 실제 상당한 검술의 소유자였기에 '무예'에 대한 자만심이 남달랐다. 이 때문에 리더로써 자격이 부족했다. 자신의 기술만 믿고 정면돌파하는 사람은 전방위적인 시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일, 단 한가지만 잘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인류 역사에서 성군이 굉장히 많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군주들은 시야가 좁았다. 요시테루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토의 수많은 백성들이 생활고에 지쳐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요시테루는 별다른 점을 깨닫지 못했다. 이에 노부나가는 요시테루가 이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독설을 퍼붓는다. 

 


노부나가: 쇼군이기는 하나 쇼군의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 
무력하게 자리만 지키고 앉아 검도로써 세상을 잊으려 하는 것뿐이외다.

요시테루: 말을 다했는가, 가즈사? 

노부나가: 허심탄회하게.... 라고 한 분은 바로 쇼군이 아닙니까. 
말에 가식이 있으면 쇼군의 호의를 저버리는 일이 됩니다. 
쇼군은 이제 칼을 버리셔야 합니다.

요시테루: 뭣이? 나의 유일한 즐거움을 버리라는 말인가, 가즈사?

노부나가:  버리지 않으면 머지않아 하극상의 검난(劍難)을 만날 것입니다. 
가령 이 노부나가가 쇼군의 지위와 권력을 노리고 있다면 우선은 쇼군을 비호할 것이오. 
허나 쇼군이 어리석다면 그냥 비호를 계속하면서 실권만은 항상 이 노부나가가 손에 쥐고 있을 것이오.  
만일, 이렇게 될 경우 쇼군은 허울 좋은 허수아비일 뿐이오.


 

사실상 쇼군은 미요시 나가요시의 허수아비였다. 이점을 간파한 노부나가는 평소 성격대로 서슴없이 말을 내뱉었다. 왜냐하면 미요시 일당을 제거할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대개 큰 목표는 지름길에서 이뤄지기 어렵다. 지름길로 가려는 자는 대부분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준비가 된 상태라면 노부나가처럼 지름길로 바로 직행하는 결단력이 중요하다. 맹수도 새끼일 때는 지름길로 가다 죽을 수 있지만 성체가 된다면 지름길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노부나가는 준비를 마친 호랑이였고, 단번에 거미줄이 얽혀 있는 지름길로 직행했다.

 

 

 

 

 


뜻밖의 행운에 흔들리지 않는다

위대한 천재의 특징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것을 자신의 작은 행운이나 불운 따위로 생각하지 않고, 신이 자기에게 무엇을 명하는지 그 뜻을 정확히 알고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무한한 창조의 싹이 튼다. 노부나가는 현실적 문제를 운에 맡기기보다 목표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적합성을 판단했다. 이와 관련된 노부나가의 판단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요시타쓰 죽음'에 대한 대처였다. 

노부나가의 장인을 죽인 '요시타쓰'는 불현듯 독살로 생을 마감했다. 

 

노부나가에게 있어 요시타쓰의 죽음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대개 평범한 사람들은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을 때, 뜻밖의 행동으로 대처한다. 가령, 로또 당첨금을 받자마자 평소에 하지 않던 뜻밖의 행동(도박,술집)으로 날려버리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비범한 사람들은 뜻밖의 행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노부나가는 요시타쓰의 죽음을 뜻밖의 행운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심지어 요시타쓰의 죽음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노부나가에 있어 요시타쓰(츠)의 죽음은 목표달성 과정에 있어 작은 사건일 뿐이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예상치 못한 행운을 얻자마자 인생의 경로를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행운은 활용하기에 따라 불행이 된다. 행운과 불행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며, 목표를 실행하는 가운데 발생한 작은사건일 뿐이다. 적어도 목표가 있다면, 행운과 불행에 초점을 맞춰 쉽게 결정을 내리는 어리석은 짓을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