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역사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쓰 1편 [야마오카 소하치.2015]

by 도양강 2018. 10. 21.

'대망'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 역사소설에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명의 인물에 관한 야마오카 소하치의 통찰이 쌓여있다. 야마오카 소하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32권)' ,'오다 노부나가(7권)' '도요토미 히데요시(7권)' 총 46권을 집필했는데, 이 46권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인간형이 담겨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즉, 대망을 읽으면 사람을 읽을 수 있다. 시대에 따라 기술이 변했지만 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으며, 세속적 욕망과 희망을 품는 인간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한다. 그래서 '대망'을 읽다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사실상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주변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권력 투쟁은 현재 진형형이며, 세속적 욕구에 인생을 바치는가 하면, 소인과 현인이 뒤섞여 세상의 혼란과 안정을 반복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결국 우리 모두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1 난세의 전략

타다마사(미즈노 성주)는 난세의 전략인 '정략결혼'으로 시집가는 14살 된 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난세에는 인간의 얄팍한 책략 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아. 

무의미한 비탄은 모두 그 얄팍한 책략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역시 이 아비의 패배였다.
인정을 무시한 계략은 계략이 될 수 없는 게야   

-타다마사-


오다이

 

소설,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들 중의 한명은 오다이 부인(도쿠가와 이에야스 모친)이다. 오다이 부인의 가문인 '미즈노'는 도쿠가와 가문이었던 미카와 측과 적대적인 관계였다. 사실, 이 사건의 발단은 오카자키 성주였던 키요야스(도쿠가와 이에야스 할아버지)의 짧은 생각부터 시작됐다. 과거 키요야스는 전리품으로써 타다마사(오다이 부친)의 부인을 요청했고, 타다마사는 이에 응했기 때문이다. 이후 키요야스는 34살의 젊은 나이로 전사해 버렸고, 키요야스가 죽자마자 세력의 흐름은 오카자키(미카와)에서 미즈노 가문으로 역변했다.

 

만일, 타다마사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부인을 빼앗아갔던 키요야스의 아들을 즉시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타다마사는 자신의 딸을 원수의 아들(히로타다, 키요야스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는 대담한 선택을 내린다. 이는 참으로 관대한 선택이었다. 상대를 힘으로써 굴복시키지 않고 덕으로 교화했다는 점에서, 타다마사는 덕을 갖춘 훌륭한 성주였다. 또, 타다마사는 오다이(딸)를 엄격하게 교육시켰기에 오다이(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모)는 오카자키 성의 백성들을 매료시켰으며, 병약하고 감정적인 남편(히로타다)마저 순응시켰다.    

예컨대, 적을 속이려면 먼저 아군부터 속여야 한다.(기병술) 어떻게보면, 오다이는 상대의 눈을 속이는 장난감처럼 교육받은 인형이었다. 단, 그녀의 속임은 인간적인 면이 있었기에 세속적인 책략을 뛰어넘었다. '타다마사'와 같이 오다이 역시 그 특유의 성실과 인내로 상대의 계략을 덮어버린 셈이다.

 

얄팍한 눈속임이 아닌 성실한 자세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훌륭한 발자취를 남긴다.  

 

 

 

 

 


2 난세의 교육법

 

` 남이 알지 못하는 병법은 남과 다른 학문에 의하지 않고는 생겨나지 않는 법이지요 `

 

국가가 공식 교육과정을 만듦으로써 세상은 빠르게 닮아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식 입시교육이다. 한국의 입시교육은 마치 공무원 시험을 방불케하는데, 이같은 교육제도는 노벨상과 같은 창의적이 분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남과 같은 길에서 조금 앞서 나가는 건 사실 학문적 성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보다 조금 빠른 수준에서는 죽을 때까지 같은 방향으로 달려야한다. 게다가 남과 같은 학문을 닦고 있으면 당장 속이 들여다보이게 된다. 이에 반해, 오다 노부히데는 교육법은 상당히 독특했다. 그는 교육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다. 세상을 호령할 새로운 인재라면, 남과 다른 학문에서 새롭게 교육받은 사람이어야 하므로 노부히데는 자신부터 남과 다르게 행동했다.(언제나 남의 의표를 찌르고는 껄껄 웃고는 했다)

그리고 노부히데의 특이한 습관은(교육관) 자연스럽게 아들 킷포시(노부나가)로 이어졌다. 노부나가는 어릴적부터 남의 의표를 예리하게 간파하는 연습을 받았고, 이에 따라 본능적으로 남과 다른 방법을 매번 선호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와 같이)남의 의표 찌르기를 즐겨했다. 즉, 상대가 오른쪽이라 하면 노부나가는 왼쪽이라고 말했으며, 희다고 하면 검다고 했다. 또, 올라가지 말라고 하면 올라가고, 부수지 말라면 반드시 부수었다. 이른바 반골수 기질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반골수 기질은 얼핏보면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중심을 갖고 통일된 사상으로 성장하게 된다면, 오히려 뛰어난 혁명가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노부히데는 노부나가의 특이한 기질을 더욱 살릴 수 있게끔, 정체 모를 가학을 가진 나미타로에게 보냈다. 

 

 

 

 


3 죽음을 다루는 아이

8살 킷포시(노부나가)는 20살 성주, 노부모토를 장난치며 궁지에 몰아넣었다. 킷포시는 나미타로에게 배운대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법을 숙지했다.

 

자고로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황시키는 방법이다. 당황하면 숨은 기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기질을 간파하는 좋은 방법은 그를 흥분시키거나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때, 당황하는 이유가 '죽음'과 맞닿아 있을수록 속마음이 드러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그리고 킷포시는 어릴 적부터 이러한 술책(당황하게 만들기)을 밥먹듯 사용했다.

 

역사적으로 펙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킷포시는 자신보다 12살이나 많은 노부모토와 내기를 했다고 한다. 내기에서 진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룰이었는데, 문제는 "집밖을 나오는 사람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 병사들에게 떨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노부나가는 천성적으로 목숨으로 장난하는 내기를 좋아했는데 노부모토와의 내기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당시, 노부나가의 장난은 매번 장난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런데 이러한 노부나가의 장난을 단순히 어린아이의 꼼수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장난이 사람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노부나가와 내기를 건 상대는 매번 '굶주린 개'가 될 것인지 '맹수'로 죽을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만일, 살아남을 힘이 없는 작은 영주라면, 여덟살 꼬마에게 거품을 물고 발악을 하거나 혹은 굶주린 개처럼 굴어야 했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당연히 굶주린 개를 원했는데, 굶주린 개는 언제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찰나의 삶을 연명해야 되기에 일종의 충성심을 강요한 셈이었다. 즉, 킷포시에게 당하는 상대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황당한 노릇이었다. 당장 굶주린 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늘 내일을 준비하며 또 그 다음 미래까지 대비해야 했다.

 

가령, '나미타로의 저택 사건'에서 야마오카 소하치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바는 분명했는데,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모르는 자는 결국 굶주린 개가 될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그런데 킷포시보다 더 무서운 자는 나미타로였다. 나미타로는 장난처럼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전술의 대가였으며, 도자기처럼 뽀얀 나미타로의 볼과 희미한 미소 뒤에는 항상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실상 나미타로와 같은 인물을 통해 '울어야 할 때 웃는 자'가 왜 무서운지 알 수 있는 셈이다. (함정을 파놓은 자는 남들이 웃을때 웃지 않는다)


노부모토 : '킷포시 님은 아직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입니다" 
나미타로 : "다른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십니까?" 
싸늘한 나미타로의 반문은 상대방에게 다른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나미타로는 노부나가의 전략을 완성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상대의 방심을 만드는 방법'과 이를 틈타 '미래의 수를 예측하는 것' 그리고 '함정을 파는 방법'과 같은 독수를 노부나가에게 가르쳤다.

 

 

 

 

 


4 선과 악


사람의 마음속에는 부처님과 악귀가 함께 살고 있어. 
악귀뿐인 사람도 없고 부처님뿐인 사람도 없는 게야, 알겠느냐?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악귀와 사귀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도 악귀가 될 수 밖에 없는 게 이치니까  -케요인-


살인사건의 7, 8할은 치정사건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사랑하던 남녀도 순식간에 원수가 되는 판국에 "돈 문제"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다. 인간 관계에 있어, 영원한 '선'은 없으며, '악'도 없다. 상황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란, 가볍지만 무겁다. 화가 났다해서 24시간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즉,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 이에 대해, 케요인은 인간이 갖는 감정의 부실함(위험성)을 오다이에 설명했다. 가령, 현실에서 상대하기 꺼려지는 사람을 억지로 상대해야 할 때는 '케요인(오다이 모친)과 오다이의 대화'가 도움이 될 수 있는데, 힘든 상황에서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부처와 사귀면 답을 얻을 수 있다.  

 

 

 

 

 


5 가마탈취 작전

오다 노부히데는 나미타로를 시켜, 미즈노와 마츠다이라 가문의 혼사를 방해했다. 이른바 신부(오다이 부인)가 타고 있는 가마를 탈취하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나미타로가 납치한 가마에는 오다이 부인은 없었고, 처녀들만 있었다. 이로써 나미타로는 노부히데에게 처녀들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청했다.   


하지만 자네가 애걸한다 해도 소용없네. 
한마디로 세상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움직이고 있는 걸세.

나무 위의 달팽이처럼. 또는 물 속의 조개처럼 말일세. 

어리석은 자의 눈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잠시 한눈을 팔고 있으면 가는 방향을 모르게 돼
자네라면 알 수 있을 거야.

 

미노의 사이토 도산이란 자는

니시노오카 근처에 살던 신분조차 알 수 없는 풍각쟁이었어. 

귀족집안이니 어쩌니 하다보면 
모든 것이 방향을 잃고 주먹구구가 되어가는 것일세.

약한 자는 멸망해야 하는 거야!

멸망이 두렵다면 달팽이가 갈 곳을 꿰뚫어보아야 돼 하하하.


노부히데는 잔인할 정도로 어떤 일의 진상을 꿰뚫어보고 거기에 채찍질을 가하는 성질을 지녔다. 그의 입체적인 관점은 언제나 상대의 수를 꿰뚫었고, 이에 당황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응시했다. 썩은 부위를 찌르면 고름이 나오는데, 노부히데는 찔러서 피가 나오는지 고름이 나오는지 관찰한 것이다. 예컨대, 피는 선명하고, 솔직하며 짧고 강한 반면 고름은 물처럼 보이지만 속빈 강정과 같다. 따라서 상대의 의표를 정확히 찔렀을 때, 별다른 이유없이 뭔가 장황하다면 이는 실속없는 사람이므로 옆에 둘 이유가 없다.

 

그리고 반골 기질이 강했던 노부히데는 관습을 배척했다. (노부히데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관습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관습에 치우치면 실속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종교란, '신에게 매달리는 약자의 관습'이었기에 노부히데는 옛 관습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고, 신마저도 전략적 도구로 사용했다. 관습을 타파하는 그의 사고는 교육관에서 잘 드러난다. 

 

"교육은 시키되, 그 기질은 그대로 살려야 되네"

 

 

 

 

 

 


6 새로운 역사는 새로운 무기가 만든다

인류 역사는 새로운 무기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뗀석기에서 청동기, 청동기에서 철기시대 사이에는 항상 새로운 무기가 등장했다. 가령, 전국시대 - 에도 막부 사이에도 '총'이라는 새로운 무기가 존재했다. 노부나가는 어릴 적부터 칼보다 총포를 다뤘다.

 

전쟁이 준비로써 승리한다는 점에서 당시 노부나가의 전쟁은 흡사 '총포 모으기' 게임이었다. 훗날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히데요시 역시 총포 모으기 전쟁에서 승리한 자였다. 야마오카 소하치는 이와 관련한 시대상을 병사들의 대화 내용으로 표현했다. 

 


이마가와 군과는 무기 자체가 다르죠. 
그 긴 창을 꼬나들고 돌진했으니 칼이나 짧은 창은 쓸모가 없지요. 
앞으로는 무기도 변할 것이라고 형님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7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출생

타다마사는 타케치요가 태어나면서 보현보살 불상이 없어졌다는 신기한 주장에 눈을 감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당치도 않은 소리! 그런 잔재주는 부처의 벌을 받는 업보가 된다. 알겠느냐? 
그런 소문을 내기 위해 누가 얕은꾀로 그것을 훔치게 했다면, 
이 경우는 불상이 아기로 다시 태어난 것이므로 아기가 세상을 떠나면 
불상도 다시 본래자리에 모습을 나타내야 이치에 맞아. 

만약 아기가 여든이나 아흔까지 장수한다면 대관절 누가 불상을 본래의 자리에 돌려놓지?

아첨하기 좋아하는 풍조는 가문을 망칠 징조인 게야. 
당치도 않은 일이지. 남아의 출생만으로도 경사로는 충분해"


 

사람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끊임없이 욕심에 둘러싸여 살아가야만 한다. 이 과정은 마치 물리법칙과 같다. 욕구와 관련된 모든 일은 좋고 나쁨을 떠나 결국 「작용-반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계속 이어가려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좋지 않은 일도 생겨나며, 달이 차면 기울듯, 어느 선에서 욕심을 버려야 화를 면할 수 있다. 가령, 좋은 일도 넘칠 정도로 발생하면, 이를 경계하며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나쁜 일은 무작정 피하려 들며, 좋은 일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좋은 것 역시 과유불급임을 깨우치지 못하면 인생살이는 지옥이 된다.

 

 

 

 

 


8 출생의 불행

다케치요의 출생에 맞춰 또 한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바로 오히사의 아들이었다. 비록 같은 아버지를 뒀지만, 다케치요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하는 아기의 운명 앞에서 오히사는 오열했다. 이를 두고, 노리마사(오히사 아버지)는 무게있는 조언을 했다.

 


일족끼리 서로 싸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 
일족 사람들이 한 가지 불평을 가질 때마다 마츠다이라 가문은 작아졌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안죠 성을 잃고, 
와타리 , 츠츠하리에까지 적을 불러들이는 꼴이 되고 말았지. 

힘을 합하여 날개를 펴면 그보다 더한 큰 힘이 없겠지만 
혈육간에 싸운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일도 없는 법이야. 
너는 이러한 이치를 알겠느냐?

큰것을 바라는 자일수록 조바심은 무엇보다도 금물이야. 
힘이 없으면 그것이 솟아날 때까지 꾹 참고 다 같이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9 쉽게 기뻐하는 자는 쉽게 시드는 법

일이 계획한대로 술술 진행될수록 잠시 주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주변에 쉽게 기뻐하는 박수부대가 있다면 이는 좋지 않은 징후다. 쉽고, 즐겁게 이뤄지는 원대한 목표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런건 사기일 뿐, 애당초 없다고 믿어라) 누구나 쉽고 빠른 길을 찾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원대한 목표일수록 쉽고 빠른 길은 없다. 

만일, 쉽게 목표를 달성했다면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자신의 실력보다 훨씬 아래의 일을 계획했거나 혹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한 알의 열매도 계절의 변수를 이겨낸 결실이듯, 원대한 목표를 향한 계획은 위기의 연속이다. 그래서 쉽게 이뤄진 일은 쉽게 무너진다. 하다못해 큰 뜻을 품고 계획한 일이라면 반드시 변수와 위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영악한 존재이며, 늘 웃음 뒤에 위기를 숨긴다. 요컨대, 리더의 주변에 쉽게 기뻐하는 자들이 넘친다면 진실된 자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계획은 쉽게 시들어버린다. 이에 관해, 신파치로(마츠다이라 충신)는 아래와 같은 충고를 유모(1살 타케치요)에게 남겼다. 

 


그런 것이 제일 싫다고 도련님은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아첨을 좋아하는 그런 비겁자로 키우지 말라고 말씀하셨어. 

경박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버릇도 들지 않게 해달라고 말씀하셨어. 
쉽게 기뻐하는 자는 쉽게 시드는 법. 

경망한 희노애락은 어리석고 못난 자의 짓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야.


 

 

 

 


10 삶의 무게

이 세상이 고통의 연속이라면 아이를 낳는 것은 죄악이다.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고난이며, 재난이다. 그래서 전쟁이 지속되던 시대는 현세가 지옥이었다. 야마오카 소하치는 지옥과 같은 시대상황에서, 도대체 삶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문했다. 소나무도 해마다 가지가 뻗어나고 가을의 풀들도 때가 되면 자라난다.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다른 동식물처럼 순순히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틈에 자연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은 사실조차 망각한다. 각자 제멋대로 계급을 만들고 영토를 정하며, 무고한 희생을 서로 강요해가며 결국 탄식한다.

 

종교 지도자들은 세상의 부조리가 결국 인간의 소유욕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스스로 지위와 권력을 버리고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러나 난세가 시작되면 또다시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인간은 자연이 평등하게 만든 인간마저 소유하려 든다. 사실상 인간세계와 같은 주종관계란 자연계에 존재할 수가 없다. 자연이 만든 부모형제의 관계만 존재할 뿐이다. 

 


시모츠케노카미(노부토모)는 점점 오만해지고 있구나. 
만백성을 보배라 부르고 자식처럼 생각하던 도덕은 이제 무력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약자의 대부분은 자랑스럽게 그 무력을 섬기고 있다.. 가련한 녀석!


 

노부토모의 사례에서 얻는 교훈은 "그릇이 큰 장수는 결코 그 부하를 일부로 죽음의 땅(사익 추구)에 몰아넣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더가 몰락하는 이유는 대부분 '사익 추구'에 측근을 몰아넣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바른 리더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인데, 노부토모는 이를 망각(착각)했다. 그는 권력을 얻은 뒤부터 점차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주가 되었으며, 겸손을 잊어버린 채 자신의 감정으로 아랫사람을 이용했다. 이에 대해 나미타로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평하며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