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욕은 최고의 독약
노부나가는 음욕을 멀리했다. 노부히데, 사이토 도산, 히로타다, 노부마쓰 등... 그의 주변에는 말년에 음욕을 탐내다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무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작 자신의 아버지 '노부히데'부터 음욕에 눈이 멀어 하룻밤 사이 유명을 달리했다. 자신의 장인이었던 '사이토 도산' 역시 말년에 '오카쓰'란 18세 여자를 첩으로 삼으면서 아들에게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피도 눈물도 없어 '살무사'로 불렸던 '사이토 도산'쯤 되는 사람도 음욕을 피하지 못한 점을 통해, 노부나가는 여자에 대한 자신의 처신을 매사 경계했다. 특히, 권력의 정점에 도달할수록 더욱 음욕을 절제했는데, 심지어 여자를 '대를 잇는 도구'쯤으로 치부했다.
여자에게 약한 것이 무장의 흠이 되는 줄 모르느냐...
-숙부인 노부미쓰에게-
노부나가는 자신보다 연장자일지라도 행실이 좋지 못하면 독언을 서슴없이 퍼부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부미쓰의 죽음'이었다. 노부나가의 숙부였던 '노부미쓰'는 이성에 주의하라는 노부나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결국 부하였던 '마고하치로'의 칼에 죽었다.(마고하치로가 사랑하던 여성을 빼앗음)
| 사람은 누구나 2가지 마음이 존재한다
사람이란 참으로 묘해서, 칼이건 그림이건 뛰어난 명품을 보면
지금가지 지녔던 것은 보기 싫어지기 마련이지.
꺽다리도 바로 그런 부류야.
오와리의 사위를 만나기 전까지는
좀더 공을 들여 단련시키려던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위(노부나가)를 대하고 나서부터 완전히 놈이 싫어졌어.
질적으로 전혀 다르거든
-사이토 도산-
사이토 도산은 '쥬베에 미츠히데'를 키워낸 인물이자 노부나가의 장인이다. 사이토 도산은 사람보는 안목이 상당히 높았다. 살무사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자식들과의 관계도 실리적이었다. 그릇이 안 되면 자신의 혈육조차 버렸다. 실제 '요시타쓰'는 자신의 아들이었지만 노부나가보다 기량이 뛰어나지 못했기에 과감하게 내쳤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보다 더 큰 뜻을 품고 고통을 이겨나가는 자에게 본능적으로 압도되는 면이 있는데, 사이토 도산이 노부나가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러했다.
인생은 수수께끼
원군을 보내건 보내지 않건, 사위가 달려오건 말건 분명히 싸움에 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뜻이 통하는 사람들은 가끔 알 수 없는 문답을 주고 받는다. 사이토 도산은 이나바야마 성으로 도망치면서부터 죽을 결심을 했다. 그가 구차하게 자신의 목숨을 연명할수록 큰뜻을 품은 사위의 앞길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사이토 도산은 자신이 죽음으로써 사위(노부나가)의 명성이 높아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어찌됐건 노부나가가 원군을 보내온다면, 미노 가문과 의리를 지킨 셈이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정은 훗날 노부나가가 자신의 딸, '노히메'를 버리지 않는 중요한 계기가 될 터였다.
만일 자신(사이토 도산)을 구하려고 사위(노부나가)가 힘을 쓸수록(성을 비움) 노부유키 일당이 즉시 반란을 도모할 만한 상황이었고, 노부나가는 앞 뒤에서 각각 요시타쓰, 노부유키의 협공을 받게 된다. 결국, 이 문제에 관한 사이토 도산의 답은 "죽음"이었다. 그는 수수께끼와 같은 서신을 사위에게 보냄으로써 자신의 결심(죽음)을 은유적으로 알렸다.
노부나가의 원군이 도착했을 때, 사이토 도산은 가차없이 성을 비우고 나가서 요시타쓰 앞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노부나가 역시 사이토 도산의 의도를 받아들여 재빨리 철수했다. 결론적으로 노부나가는 전투에 패했지만 사위와 장인, 모두 훌륭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사이토 도산'의 죽음을 통해, 물불 가리지 않는 노부나가의 괴팍한 기질은 한층 성숙해졌다. '사이토 도산'은 죽음으로써 '때로는 물러나는 것이 곧 나아가는 것'임을 사위에게 가르쳤다.
물러남으로써 한발 더 나아간다
노부나가는 사이토 도산이 죽자 돌연 은퇴했다. 그리고 성주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와 같은 노부나가의 갑작스러운 은퇴는 오와리 일대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를 제거하려던 반대파들은 아연실색했다. 노히메조차 '남편의 은퇴'는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었으나, 결론적으로 노부나가의 생각은 옳았다.
그래서 이 노부나가는 은퇴하기로 결심했어. 오늘부터 기요스 성의 주인은 바로 그대야(간류마루).
그렇게 묘한 표정 지을 것 없어. 원래 그대는 오와리의 태수 시바 씨의 적손.
따라서 이 성의 주인이 되어 오와리 일대를 지배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신분이야
노부나가의 강점은 냉철함이었다.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며 냉정하게 전세판단을 내렸고, 결심 이후에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의 빠른 은퇴 역시 실리만을 취한 전략이었다. 노부나가에 있어 실리란 곧 전략이다.
지금까지 이 노부나가에게는 미노의 살무사라는 방패가 있었기 때문에 어쨌든 오와리는 안전했어.
그러나 살무사가 쓰러졌다면 이미 내게는 오와리를 다스릴 힘이 없어.
힘이 없는 자는 은퇴하지 않으면 안 돼. 알아듣겠나?
이 노부나가는 은퇴하지만 그대에게 힘이 생기도록 도와주지 않은 채
오와리를 물려주지는 않아. 염려할 것 없어.
지금은 없으나 만들고자 하면 생기는 것이 힘이지
노부나가의 사고는 명색하며 통쾌할 만한 수준이다. 비록, '간류마루'는 현재 힘이 없는 상태였지만, 어쨌든 그는 아시카가 쇼군으로부터 갈라진 이마가와 씨와 같은 집안이었다. 노부나가의 계산에 의하면, 아마가와 가문과 동맹관계에 있는 시바 가문이 오와리 일대를 다스린다면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분명 뒤에서 도와줄 것이었다. 이후 상황은 노부나가의 예측 그대로 흘러갔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세 집안(기라,시바,이마가와)의 제휴에 적극 찬성했다. '노부나가의 조기 은퇴'는 허울뿐인 명분보다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했던 그의 선견지명이 통한 사건이었다.
불립전술
불교의 가르침은 문자로 깨칠 수 없다. 이를 불립문자라 하는데 도키치로(훗날 히데요시)는 글을 쓰고읽지 못했다.
지부다유의 장수들은 모두 예부터 종이에 쓴 문자를 읽고 자란 성주들.
이들은 문자로 기록된 싸움의 전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싸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거든.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싸움이란
노부시(산야에 숨어 있으면서 패잔병 등의 무기로 무장한 무사)나 무뢰한들의 전술을 말하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대장은 이 전술에 밝은 인재를 찾아
이처럼 매일같이 말을 달려 성 밖으로 나오는 것인데, 나를 만난 것은 하늘의 은혜.
나를 얻은 것은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상서로운 조짐이 아닐 수 없어
도키치로의 말을 듣고 노부나가는 충격을 받았다. 도키치로의 주장은 유아독존 같은 그의 사고력에 파장을 일으켰다. 노부나가가 보기에 도키치로의 역발상에는 황당하게도 까막눈이 한몫하고 있었다.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에서 양쪽 모두 훤히 알고 있는 수싸움이라면 서로 싸울수록 처절해진다. 이에 대해, 도키치로는 종이에 씌어 있는 문자만 읽다보면 일을 그르친다고 강조했다.
어차피 그림이나 글자도 실재하는 삼라만상을 재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를 깨달은 자는 무궁무진한 전술과 아이디어를 창출해낸다. 재현된 것은 그림자이지 삼라만상의 실체 그 자체가 아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모든 현상은 그림자다. 정작 실체는 사람의 마음이다. 의, 식, 주 모두 사람 마음의 그림자일 뿐이다. 기병과 정병을 자유자재로 운영하는 자는 의식주에 가려진 실체(사람의 마음)를 간파하는 법을 알고 있다. 전쟁에서 마음을 간파당한다는 것은 곧 '패배'를 의미하고, 이는 실패와 좌절을 의미한다.
노부나가와 도키치로는 인간의 마음을 둘러싸고 있는 욕구와 눈을 가리고 있는 교묘한 장치들을 재빨리 간파하고 이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는 2가지 눈이 있다. 하지만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일반적)"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 2개의 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볼 줄만 알고 읽을 줄 모른다면 눈을 반쯤 감고 다니는 것과 같아 늘 실수가 잦다.
노부나가는 그림자(실체를 가리고 있는 도구[문자,말 등....]들)를 '허상'이라 봤고,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실체를 '실리'로 해석했다. 가령, 병법서는 실체가 아니다.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 글로 씌어진 병법서들은 '허'가 된다. 전쟁에서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전황 속의 작은 사건이 '실체'가 된다. 그래서 병법가는 '허상'을 공부해야 한다. 본질이 아닌 것들에 유인당하거나 반대로 상대를 유인하기 위해서다. 또, '허상'을 파악할 수 있어야만 무궁무진하게 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실리'를 알아볼 수 있고, '허상'을 분쇄할 수 있다.
도키치로는 실리로써 세상을 배웠다. 덕분에 허상과 실리를 알아채는 감각이 뛰어났다. 도키치로는 상식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며 반말로 지껄여대더니 갑자기 고개를 정중하게 숙이는가 하면, 위로는 천문, 아래로는 지리 운운하다가 그것은 어떨결에 한 말이라며 자신을 희화화시키며 정직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도키치로는 자신의 독특함을 '도키치로의 전법'이라 말하지만 생각해보면 '실'을 통해 '허'를 공격하고, '허'로써 '실'을 숨기거나 상대를 방심케 하는 식의 '허허실실' 기법이라 할 수 있다. 글을 몰랐던 도키치로는 직접 발로 뛰며 정보를 최대한 끌어모은 후, '실체'를 간파하는 생각에 골몰했다. 그러고나서 상대가 좋아하는 '허'를 그대로 맞받아치거나(성격에 따라) 혹은 순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실을 감추며) 도키치로 입장에서 '허'와 '실'은 결국 목표달성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으며, 매번 이를 바꿔가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허'를 맞받아치는 방식에서 노부나가와 도키치로의 방식은 미묘하게 달랐다. 노부나가는 함정을 파고, 상대의 '허'를 속도로 제압했다. 상대방은 노부나가의 움직임에 당황해서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잦았다.(독수) 반면, 도키치로의 '허'는 상황을 묘하게 만들어 날카롭게 상대의 실리를 조금씩 갉아먹는 방법이었다. 일명, 묘수였다.
노부나가의 '허'는 독수였으며, 이에 걸려든 상대는 '실'(목숨)을 내어주어야 한다. 반면, 도키치로의 '허'는 묘수와 같아서 상대는 자신의 실체가 무너져가는 것도 모르고 '허'에 말려든다. 도키치로의 묘수와 노부나가의 독수는 다르면서도 결과가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리고 눈치가 빠른 노부나가가 도키치로의 묘수를 놓칠 리 없었다. 노부나가는 단번에 도키치로가 자신의 부류임을 간파했고, 일부러 허드렛일을 시켰다. ('원숭이'라 부름) 만일 노부나가가 도키치로를 정중하게 대했다면, 주변의 반대로 도키치로는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처럼 문자를 통해 전쟁을 배운 금수저 출신들은 새로운 시대의 영웅들을 좇지 못했다. 과거에 사로잡힌 이들은 '허상'을 통해 '실리'를 배웠다. 그래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노부나가, 도키치로가 감춘 허상에 사로잡혀 '실리'를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람에 반하다
헤헤헤헤 여자란 여간 똑똑한 게 아니어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부지런한 사람과 같이 살지 않으면 편히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거든요
도키치로는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허'와 '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연애하기를 원하지만 정작 결혼은 '성실한 남자'와 한다. 결혼은 '양육 및 생존'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결혼생활에 있어 부수적인 것일 뿐 실체는 '능력'이다. 최고는 아닐지언정 차선책이라도 선택하려면 '부지런함'이 우선이다. 따라서 남편감의 최소 능력은 '부지런함'에서부터 시작한다.
도키치로는 세상 만물이 돌아가는 이치를 항상 '실체'와 '허상'으로 읽었다. 상대가 준비한 '허상'뒤에 숨은 '실체'를 조금씩 갉아먹으며 자신을 각인시키는 능력은 노부나가보다 도키치로가 한수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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