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에 기회가 있다
1 준비된 역습
1929년, 세계 대공황 시기, 단 3년 동안 미국에서만 8만여 개의 기업이 파산했고, 5,000여 개의 은행이 무너졌다.
한편, 이 같은 상황에서도 '켈로그'와 같은 기업은 크게 성장했다. 간편 씨리얼로 유명한 켈로그는 대공황 시기에 큰 성장을 이뤄낸 대표적인 기업이다. 당시 켈로그는 대공황으로 직장을 잃거나 거리로 내몰린 극빈자들에게 시리얼을 무료로 배급했다. 또, 마케팅 비용을 늘려, 직원들을 대량 해고했던 경쟁사들과 상반되는 행보를 보였다.
1930년, 켈로그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때, 2조 정도의 자선기금을 4년 동안 기부했고, 어린이들을 위한 아동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이로써 켈로그는 자신의 병원에서 정신병자 흉내를 내며 입원하여 시리얼 제조법을 훔쳐간 C.W 포스트(선발업체)를 밀어내며 1위로 올라섰다.
이후, 2000 ~ 2001년 기간, 닷컴버블이 붕괴될 때 역시 제 2의 켈로그들이 나타났다. 상위 25퍼센트 기업 중 '비금융 40%', '금융 30%'가 새로운 기업으로 교체됐다. 버블 붕괴가 역전극의 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의외로 꽤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황기에는 장비뿐만 아니라 선발 주자의 기술까지 헐값에 매입할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가령, 2002년 조선 업계의 극심한 불황으로 부도가 났던 스웨덴의 핵심 조선업체 '코쿰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코쿰스를 정리하던 채권단은 '말뫼시'에 있는 조선소의 핵심 생산자산 '갠트리 크레인'을 매물로 등록했다. 하지만 조선업계의 불황이 워낙 장기화되는 상황이라 갠트리 크레인을 인수하려는 업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채권단은 애물단지가 된 골리앗 크레인을 철거하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매입사를 찾았고, 최종적으로 한국의 현대중공업이 인수했다. 이른바 `말뫼의 눈물`이다. 이때, 코쿰스의 골리앗 크레인을 해체하는 모습을 보며, 말뫼 시민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불황의 비극은 누군가의 희극이 될 수 있다.
2 최적 타이밍
다만, 불황이 기회라 해서 무작정 확장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기회에는 반드시 최적 타이밍이 있으며, 이 '때'를 보려면 흐름을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컨설팅 업체 '가트너'는 혁신적 기술에 대한 시장진입 타이밍으로써 다음과 같은 '하이프 사이클 5단계'를 제시했다.
1단계 : 기술촉발
2단계 : 기대의 최고점
3단계 : 환멸(싫증)
4단계 : 계몽
5단계 : 생산
시장진입의 타이밍에서 '최초는 결코 최고'를 보장하지 않는다.
가령, 백열전구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에디슨이 아니었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처음 만들었던 1879년, 그 이전까지 백열전구를 만든 사람만 공식적으로 20명이 넘었다. 최초로 백열등 개발에 성공한 사람은 1802년, 험프리 데이비(영국)였으며, 1840년에는 진공관에 백금 필라멘트를 사용하는 백열전구가 개발됐다. 이후 탄소솜으로 만든 필라멘트와 진공관을 활용해 수명과 밝기를 개선한 실용적인 백열전구를 처음 만든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조지프 스완(1878년)이었다.
1879년, 에디슨이 백열 전구를 출시했을 때, 전구 기술은 더이상 '최초의 혁신'이란 칭호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슨은 어떻게 최고가 될 수 있었을까?
당시, 에디슨은 선구자들이 개발한 백열전구를 개량하여 수명을 연장하는 수천번의 실험을 거듭한 끝에 대나무를 태운 탄소 필라멘트가 가장 밝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다소 웃긴 점은 에디슨이 실험에 사용한 대나무 필라멘트 기술조차 흑인 발명가 '루이스 라티머'의 아이디어였다는 점이다.
에디슨의 뛰어난 점은 백열전구 발명이 아닌 사업가로서의 면모였다.
우선 그는 빨랐다. 백열등이 돈이 된다는 것을 직감하자 재빨리 배전 시스템을 만들어 백열등에 필요한 전력을 기업과 가정에 공급함으로써 백열 전구라는 발명품을 전력 시장과 연결했다. 결국, 백열전구 발명에 그쳤던 '조지프 스완'이나 오래 타는 필라멘트 발명에 머물렀던 '루이스 라티머'와 에디슨의 차이는 '시장에 대한 접근'이었다.
에디슨은 사업에 박차를 가해 전력 시장을 만들어냈고, 자신보다 1년 먼저 백열등을 만든 조지프 스완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걸었다. 이 같은 에디슨의 소송탓에 조지프 스완의 회사는 자금난에 허덕였고, 에디슨은 재빨리 조지프 스완의 회사마저 합병했다. 에디슨은 순식간에 백열등을 필두로 하는 전력시장을 독점해 버렸다.
위기 상황(난세)에서 영웅적 면모를 보이는 사람들은 대개 재빠른 발명보다는 새로운 발명과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는 능력이 강하다. 또, 시장과 기술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능력이 남다른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스티븐 잡스다. 실제 잡스와 에디슨의 발자취와 상당히 닮아 있다.
산업에서는 누구나 남의 것을 훔치기 마련이다
나 자신도 많은 것을 훔쳤다
다만, 나는 어떻게 훔쳐야 하는지 알지만 그들은 모른다
-에디슨-
어떤 분야건 1등으로 시작해야만 최고가 되는 것은 순전히 착각이다. 이는 창업가들의 강박관념이며, 중요한 것은 시장이다. 시장을 관찰한 뒤, 고객의 니즈에 기술을 정확하게 맞추는 능력이 바로 선구자의 자질이다. 고객의 니즈와 시장을 기술에 접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사실상 2등, 3등은 중요치 않다. 1등을 향한 역전은 시간문제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최적 타이밍은 고객의 시간에 달려있다.
3 블루오션은 환상이다
블루오션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블루오션은 신기루와 같다. 그러므로 블루오션을 찾기보다 차라리 시장과 기술을 연결하는 안목을 기르는 편이 사업가로서의 최고의 능력이다.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은 1992년에 개발된 IBM사의 '사이먼'이었다.(약 166만원) 이는 애플이나 블랙베리보다 무려 15년 앞선 기술이었다. 그러나 '사이먼'은 실패했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1996년, 노키아는 '노키아 9000커뮤네이터'라는 스마트폰을 출시했지만, 이 역시 IBM의 '사이먼'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 2006년, 그나마 노키아는 스마트폰 판매량 3600만대의 실적을 올렸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 이유는 '심비안'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고객은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를 원하고 있었지만, 노키아는 자체 개발한 '심비안'S/W만을 고집했다. 만일 노키아가 재빨리 구글과 손잡고 안드로이드 체제로 변경했다면 아마도 지금의 삼성과 샤오미는 없었을 것이다.
반면, 스티븐 잡스는 'IBM', '노키아'보다 10년이나 늦었지만, 고객이 원하는 핵심을 파악한 뒤 재빨리 그곳에 집중했다. 디자인 인터페이스와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어 스마트폰 내의 콘텐츠들을 연결시키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시장 친화적인 기업은 '카카오'다. 가령, 카카오뱅크는 기존에 전혀 없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이미 개발된 핀테크 기술을 고객이 원하는 편리함과 연결시켰다. 또, 메신저와 캐릭터를 적극 활용하여 고객의 니즈를 금융시장과 연결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시대에 맞춰 모바일 금융을 적극 활용하여 고객 니즈를 재빨리 연결한 것이다. 그 결과, 카카오뱅크는 기업은행이나 하나은행보다 30년 뒤쳐졌지만 출범 100일 만에 기존의 강자들을 따라잡았다.
4 선택과 집중
종합편성채널, JTBC는 신생 방송국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행보를 보였다.
JTBC의 성공적인 성과는 '선택과 집중'의 결과였다. 신생 방송사는 똑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지상파 방송들이 수십년간 쌓아놓은 콘텐츠와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 만일, 신생 방송사가 모든 프로그램에 골고루 인력을 배치한다면 이도저도 아닌 방송 프로그램들을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신생 방송사는 모든 분야에 인력을 집중하기보다 한 분야를 선택해서 인력을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JTBC는 지상파에서 시도하기 힘든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킬러콘텐츠를 하나씩 개발했다. 처음에는 남다른 뉴스를 만들었다. 펙트를 나열하는 식의 뉴스와 달리 사장이 직접 펙트를 체크하며, 심층있는 인터뷰와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뉴스룸을 하루 2시간씩 진행했다. 이와 같은 뉴스룸의 깊이는 뉴스의 판도를 흔들었다. 이후, '예능 -> 드라마' 순으로 킬러 콘텐츠를 늘려갔다.
JTBC는 약자가 강자의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훌륭하게 구사했다.
약자가 불리한 여건 속에서 극적인 역전에 성공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우선, 자신만의 경쟁력 있는 분야를 선택한 뒤, 해당 분야에 「시간, 자본, 창의력, 등..」 한정된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그리고 해당 분야에서 확실한 우위를 통해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면, 서서히 분야를 넓혀나간다.
5 패스트세컨드 전략
`프런티어? 패스트 세컨드가 되어라`
헨리 포드는 자동차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엄청난 실패자였다. 1895년부터 1905년까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폭발하자 너도 나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는데, 당시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난립하며 온갖 자동차들이 출시됐다. 심지어 전기차도 발명됐다. 전기차는 1837년 처음 발명되었고, 1912년에는 최고 속도가 시속 32킬로미터까지 올라갔다. 당시 헨리포드 역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1년 만에 파산했고(1901년), 심지어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다.
헨리 포드는 완벽주의자였다.
포드는 젊은 혈기에 생산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비싼 자동차 모델을 개발했다. 그 결과,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다. 이후, 1903년, 포드는 첫 실패를 교훈삼아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지만 이미 포드는 완벽한 후발주자로 밀려난 뒤였다. 당시 100개가 넘는 자동차 회사들이 무분별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포드는 전략을 바꿨다. 기술에만 집중했던 자신의 스타일을 과감하게 버린 뒤, 철저하게 고객을 연구했다. 그 결과, 무작정 뛰어난 성능보다 적절한 품질과 적당한 기술로써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자동차를 고객들이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로써 포드는 가격을 대대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대량생산), 적절한 품질과 적당한 기술로 시장을 선점했다.
고객의 니즈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포드가 생산한 모델이 바로 T모델이다. T모델은 출시가격이 경쟁사의 절반도 되지 않은 850달러에 출시됐다. 또, 9년 뒤 T모델은 360달러까지 떨어진다. T모델이 생산된 10년 동안,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포드사에 밀려 도산했다.
포드는 프런티어보다 빠른 2등 전략을 택한 셈이었다. 경쟁사들이 신기술과 혁신에 몰두했던 것과 달리 포드는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마감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운전하기에 쉽고 튼튼한 값싼 자동차가 탄생했고, 소비자들은 이에 열광했다.
6 소비자니즈 그리고 연결
세상에 없던 새로운 혁신은 극소수 천재들만의 영역이다.
그러나 남들이 포기한 기술을 새로운 시장과 연결하는 것은 관심과 열정만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 실패한 기술이나 서비스라도 실패 원인을 면밀히 살펴, 이를 고객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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