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2018.전진용](3)재즈 혁신의 시작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by 도양강 2019. 6. 21.

1 비밥[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셀로니우스 몽크,마일스 데이비스] 

재즈는 스윙에서 비밥으로 넘어가면서 혁명가 4인이 등장한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 '셀로니우스 몽크', '마일스 데이비스'다. 이 4인은 미술계로 묘사하자면 '야수파'를 연상시킨다. 야수파의 특징은 강렬한 원색과 거친 형태에 있다. 비밥 역시 처음 듣기에는 다소 거칠다.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는 천재였다. 아카데미상 3개를 수상한 작품, '위플레쉬'에 등장하는 플레처 교수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뮤지션이 '찰리 파커'다. 찰리 파커는 도대체 어떤 특징이 있을까? 


찰리 파커의 유년시절은 연습과 마약으로 얼룩졌다. 찰리 파커를 천재의 길로 이끌어 준 것은 '민턴스 플레이하우스'였다. 캔자스시티 스윙재즈는 댄서들의 움직임에 맞추느라 틀이 굳어졌다. 이에 흑인재즈 뮤지션들은 좀더 자유로운 즉흥연주를 강렬하게 원했고, 민턴스 플레이하우스는 재즈 뮤지션들의 창작욕구를 배출하는 분출구였다. 단, 민턴스 플레이하우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무대였지만 아무나 감히 올라갈 수는 없었다. 민턴스 플레이하우스는 실력 있는 자들끼리 치열한 배틀이 펼쳐지는 무대였다. 


[찰리 파커 & 디지 길레스피]


2 재즈학교 『민턴스 플레이하우스』

마일스 데이비스는 민턴스 플레이하우스에서 한번 연주하는 게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2년간 배운 것보다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는 민턴스 플레이하우스에서 제왕으로 활약한 인물들이었고, 이 2명의 경쟁으로 탄생한 장르가 '비밥'이다.

 

찰리파커의 대표곡 'be-bop(비밥)'을 감상해보자. 

본능과 직관에 따르는 즉흥연주가 상당히 길다. 찰리파커는 점차 형식적으로 굳어지고 있는 스윙재즈에서 다시 즉흥연주를 폭발시켰다.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연주 전에 간단한 멜로디 스케치만 할 뿐, 연주를 어떻게 하겠다 짜놓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즉흥적으로 처리했다. 


찰리파커는 머리로 연주하지 않고, 자신의 본능과 직관에 따르며 가슴으로 연주를 했다. 반면, 디지 길레스피는 음악 이론과 지식이 해박했고, 독자적인 즉흥연주보다는 빅밴드 방식을 선호했다. 찰리와 디지의 스타일을 동시에 느끼고 싶다면, 'Mohawk'을 감상해보자. 디지 길레스피의 빅밴드 형식에 찰리 파커의 튀는 본능이 뿜어져나온다. 


찰리 파커는 천재들이 늘 그렇듯, 자기관리에 있어 최악이었다. 그는 마약과 술에 빠져 살았고,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지속했다. 심지어 디지의 후임으로 영입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게런티를 가로채고, 자신의 빚을 마일스에게 뒤집어 씌웠다.

 

찰리 파커는 남들이 몇주간 연습한 내용을 연주 전에 도착해서 한번 훝어보는 것만으로 남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연주를 했다. 그는 피카소와 같은 특이한 재능(훔치기)이 있었다. TV, 광고, 라디오, 클래식 등 우연히 들은 멜로디 한 가락을 뽑아내 자신만의 멜로디로 즉시 재창조해냈다. 그의 평소 생활은 망나니였지만 연주할 때만큼은 거의 신적인 존재였다. 

 

"찰리 파커는 최근 10년간 레코드를 만든 거의 모든 재즈 연주자를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할 수 있을 것이다`` -레니 트리스타노-

 

비밥이 흥행하던 당시 재즈계엔 찰리 파커 한 사람과 그 나머지가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찰리의 영향력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자기관리에 실패한 나머지 찰리파커는 일생을 마약과 술 그리고 여자로 소모하다가 33세 때, 자살을 시도한다.(딸이 폐렴으로 죽은 사건 때문에 충격받음) 이후 찰리는 재기하지 못하고, 결국 어느 남작 부인(패노니카 드 쾨닉스워터.로스차일드 가문의 상속녀)의 호텔 아파트에서 금단증상으로 인한 급성폐렴, 궤양,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했다.  


3 유쾌한 뮤지션 찌그러진 트럼펫, 디지 길레스피

디지 길레스피는 재즈 경영인으로 통한다. 그의 경영능력은 콜먼 호킨스를 연상케한다. 개그맨 뺨치는 해학을 가진 디지 길레스피는 로린버그 음악원에서 정식으로 트럼펫과 피아노를 공부했다. 


남부 출신 흑인 뮤지션답게 넉살 좋고 모욕을 웃어넘기는 순발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디지 길레스피는 자신의 표현하는 데에 유능했고, 그의 패션스타일과 찌그러진 트럼펫은 상징이 되었다. 위의 사진처럼, 트럼펫을 불 때 부풀어오르는 뺨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야수같은 본능이 번뜩이는 스타일이 찰리 파커의 능력이라면, 디지 길레스피는 조합하는 창의력이 뛰어났다. 그의 아파트는 동료 및 재즈 뮤지션 지망생들로 북적였으며, 디지는 라틴,쿠바 음악을 스윙재즈에 접목시켰다. 역사적으로 재즈가 혁신하는 방법에는 크게 3가지가 있었다.


1) 새로운 도구를 도입

2) 상식적인 규칙을 파괴

3) 타 장르 흡수



루이 암스트롱, 콜먼 호킨스가 1번 유형으로 재즈를 혁신시켰다면, 찰리 파커가 2번 유형, 디지 길레스피는 전형적인 3번 유형이었다. 그의 실험정신은 찰리 파커와 함께 비밥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아프로큐반재즈, 큐밥,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가 뿌리내리는 데에 일조했다. 특히, 재즈계 혁신의 아이콘,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세계에 큰 영향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