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은 총 2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사전적 의미에서 멜랑콜리는 '우울 혹은 비애'를 의미한다. 주로 유럽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다보면 '멜랑콜리'적인 느낌을 받는다. 가령, '랫미인', '원스'와 같은 영화나 콜드플레이, 라디오해드, 핑크 플로이드 등...유럽 음악에서는 다소 멜랑콜리적인 느낌이 많다.
멜랑콜리를 문학장르에 담았을 때는 와인을 2잔 정도 마신 느낌과 비슷하다. 글을 읽으면서 술에 취하는 듯한 느낌이 가장 멜랑콜리하지 않나싶다. 책에 있는 29편의 글 중에서, 개인적으로 멜랑콜리에 가까운 단편은 총 5편이었다.
등신, 안심 -김성중-
저는 오마르입니다 -백가흠-
분실물 -임현-
연기가 되어 -정용준-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 -최수철-
위의 5편을 와인에 비유하자면, 가장 떫은 맛은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이며, 가벼운 로제와인 느낌은 '등신, 안심'이다. 등신, 안심을 제외한다면 모두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있으며, '연기가 되어'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 중에서도 초현실과 현실의 조화를 이상적으로 표현한 느낌(멜랑콜리)은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이다.
『소설 아이디어』
'작가는 게으름'에 관한 새롭고 신선한 해석을 제시한다. 극중 주인공 '구평모'는 너무 게을러서 초등학교에서 두 차례 낙제를 하고, 출석일수를 못 채워 중학교에서 퇴학 당한다.
구평모는 학력미달로 군대도 못 가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백수로 지내다가 중소기업 말단직에 취업해서 겨우 결혼한다. 하지만 곧 회사에서 해고되고, 결국 부인에게 얹혀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평모를 게으른 인간이라 말한다.
게으름은 누가 정한 기준일까?
부지런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신의 할일을 미루지 않고 처리하는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의 할일은 무엇일까? '일'을 두 가지로 보자면,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예술가형'이 많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공무원 & 직장인 유형이다.
하루를 돌아보자. '해야만 하는 일'을 했던 시간이 많은가? '하고 싶은 일'을 했던 시간이 많은가? 대부분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 심지어 엄청난 부자이더라도 돈을 관리하거나 잘 놀기(?)위해서라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해야만 하는 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가?
먼저, 생존을 위해서 해야만 하고, 그 다음으로는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고, 행복을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만 한다. 구평모는 이런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생존이 위협받지 않고, 불안하지도 않고, 행복하다면 굳이 이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을 하다보니 행동이 느렸다. 으례 관행처럼 행하는 '악수'조차도 '이 일을 해야만 하는걸까?'라고 생각하다보니 느리게 진행했다. 게다가 굳이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일은 하지 않기로 했고, 점차 게으른 인간으로 낙인찍혔다.
우리는 사소한 관계에서조차 참 많은 일을 해야만 한다. 필요없는 눈 인사와 악수부터 상대를 생각하는 옷차림까지 많은 일들을 해야만 한다. 소설 주인공, '구평모'처럼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만 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이 세상에서 할일은 별로 없다. 관습처럼 행하는 일들은 실제로 별 의미가 없는 일들이다. 그래서 구평모는 세상에서 벗어난 인간이 되었고, 그는 게으른 인간이 되었다.
구평모는 그저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들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자질구레한 일(삶의 부조리)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을 흉내내기보다 늘 중요한 말과 중요하게 해야 하는 일만 한 것뿐인데, 실제 중요한 말과 중요한 일이 너무나 적다는 사실에 그 자신도 놀라고 실망해버린다.
『소설 구조』
단편에서 가장 인기있는 미스터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미스터리
제시-> 미스터리 심화 - 실마리(새로운 추측) - 사건 - 미스터리 해소 - 던지는 메시지(은유)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은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단편소설 구조다. 로알드 달이 자주 사용하는 '미스터리 구조'를 사용하고 있으며, 미스터리 구조의 특징은 마지막에 강력한 여운을 남기는 기법에 있다.
미스터리 구조는 대부분 '곤경에 처한 남자'로 시작한다.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 역시 '게으름' 때문에 곤경(백수생활)에 처한 구평모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구평모가 게으른 이유에 관한 미스터리를 반박하는 미스터리를 곧바로 제시(새로운 추측)한다.
특이한 점은 사건에서 미스터리를 해소하는 과정 사이에 '게으름'에 대한 작가의 직설적인 관점이 직설적으로 꼿혀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꼿혀 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충격적인 재해석이 너무나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가는 '과장'을 통해 사건을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풀어냈다. 구평모는 야근을 하고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는 아내에게 팔베게를 해주다 그만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망한다. 마지막 역시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고민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지만 결국 그 일은 좋지 끝까지 게으른 인간이라는 오명으로 끝나버렸다.
구평모가 생의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 일(팔베게)은 굳이 해야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구평모는 또 게으른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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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만 하는 일 |
하고 싶은 일 |
결과 :: 좋음 |
훌륭한 사람 |
똑똑한 사람 |
결과 :: 나쁨 |
부지런한 사람 |
게으른 사람 |
사회는 4가지 부류로 사람을 인식한다.
첫번째, 해야만 하는 일을 했고, 결과가 좋으면 훌륭한 사람이란 이미지를 얻는다. 가령, 세종대왕, 이순신과 같은 영웅들은 모두 해야만 하는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사람들이었다.
두번째, 하고 싶은 일을 했는데 결과가 좋다면 '똑똑한 사람'이란 칭찬을 듣는다. 주로 대박난 경영,경제인들 중에서 해당 부류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많다.
세번째, '부지런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며,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다. 어느 시대나 아버지들은 부지런했다. 아버지는 항상 가족을 부양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좋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다. 결과가 어찌됐건 아버지는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부모로서 그 일을 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이들은 '똑똑한 사람'처럼 '하고 싶은 일'을 했지만 운이 나쁘거나 결과가 좋지 못한 부류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결과가 좋지 못하면, 어느 분야건 게으르다는 평을 피하기 어렵다. 만일, 엔디 워홀의 '그림'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 데에 실패했고, 비틀즈의 시도가 인정받지 못했다면 모두 이들은 게으른 인간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메시지』
결국, '게으른 사람'과 '똑똑한 사람'의 차이는 결과의 좋고 나쁨에 달려있다. 결과에 따라 이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 된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에게 되도록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분야에 가도록 추천한다. 적어도 '해야만 하는 일'을 할 경우에는 결과가 나쁘더라도 부지런한 사람이란 평을 듣기 때문에 생존을 걱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구평모의 비극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분야'와 '결과'에 있었던 게 아니다. 구평모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목표가 없는데 좋고 나쁨의 결과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구평모는 철저하게 게으른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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