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 7편 [야마오카 소하치.2015] - 영웅이 남긴 것 -

| 지리멸렬 전술

노부나가의 강점은 언제나 상식에 구애받지 않고 이를 무시하며 거침없이 움직이는 '실행력'이었다. 노부나가는 우에스기 겐신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알려진 강점을 역이용했다. 이른바 '지리멸렬 전술'이었는데, 이 전술은 그의 성격과 맞지 않는 비상식적인 방식이었기에 단 한번만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노부나가는 일부로 상대에게 '허점'을 보여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겐신에게 보였다. 물론, 노련한 겐신이 노부나가의 얄팍한 술수에 응할 리 없었다.(겐신이 응하지 않을 것이 노부나가의 노림수였음) 그 결과, 겐신은 때를 놓치고 말았다. 계속 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강점을 구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에스기 겐신의 최대 강점은 전투를 즐긴다는 점이었는데, "전투를 즐기는 자가 전투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 노부나가의 의도였던 것이다. '공격할 곳'이 너무 많을 경우, 오히려 사기가 가라앉는다는 점을 역이용한 셈이다.

`논점 흐리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사기꾼들은 논점을 교묘하게 흐리며 사람들의 자만심을 파고든다. 상대를 치켜 세우며 핵심 사항을 절묘하게 피한다. '지리멸렬' 진술은 상대의 자만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전략이다. 겐신은 노부나가가 어디에 집중하는지 알고 있었고, 노부나가는 뻔하게 드러난 것을 숨겨야하는 상황이었다. 노부나가가 만일 평범한 무장이었다면 가가나 에치젠의 입구 근처에서 겐신과 꼼짝없이 일대 결전을 벌였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주고쿠의 히데요시', '긴키에 있는 아들 노부타다', '오사카의 사쿠마 노부모리', '아케치 미쓰히데' 모두 불러들여야 하므로 엄청난 희생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작전 회의 때의 분열을 교묘하게 이용하여(이중첩자) 겐신의 예봉을 아슬아슬하게 피했으며, 정작 자신은 (겐신이 멈춰있는 사이)아즈치와 교토 사이를 왕래하며, 여섯 군데의 싸움터를 지휘했다. 북부에 위치한 우에스기 군은 눈 속에서의 단절을 우려하여 매번 겨울의 싸움을 피했기에 어차피 눈이 오면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겐신이 노부나가의 약점을 알듯 노부나가 역시 상대의 약점을 알고 있었기에 겐신의 예봉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미츠히데의 오판

미츠히데는 왜 노부나가를 배신했을까? 곧이 곧대로 보자면, '영지 교체에 대한 불만'이 주된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이 7할'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우선 미츠히데는 노부나가의 처사에 감정이 심하게 흔들렸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마음의 문이 닫혀 버린다. 이에야스의 접대에서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의 생각을 전혀 읽지 못했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짐작컨대, 당시 미츠히데가 감정적으로 뒤틀려버린 상태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감정적인 상태는 사람을 극단의 상황으로 밀어붙인다. 감정에 휩싸인 사람은 한치 앞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며, 미츠히데의 경우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마저 고려해버렸다. 

 

한편, 세상에는 벌레 한 마리를 죽여도 용서할 수 없는 경우와 백만의 적을 죽여도 그것이 선이 될 경우가 있다. 살생조차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경전에는 사람을 보고 설법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정작 누구보다 경전에 밝은 미쓰히데가 이를 망각해버렸다. 노부나가는 불세출의 혁명아였다. 그런 노부나가 앞에서 '자비가 제일이고 선정이 어떻고 하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엄청난 무례였다. 게는 자기 딱지에 맞게 구멍을 판다는 말이 있듯, 혁신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미쓰히데 입장에서는 노부나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에 있어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이해의 실'이 끊어지는 경우처럼 무서운 상황은 없다. 미츠히데의 경우, 에치젠의 승려를 불태워버린 노부나가 앞에서 살생을 논했으니, 주군과 자신을 연결하는 실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아마도 노부나가가 죽지 않았다면 미쓰히데가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


그대는 이 노부나가가 오다 가즈사노스케였을 때와 우다이진이 된 후의 전략이 같아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오다 가즈사노스케는 언제나 목숨을 내던지고 힘겨운 대적과 맞서 싸웠어.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책략을 써서라도 이기지 않으면 안 되었어. 

그러나 지금은 우다이진이야. 

천하를 호령하는 무장이 되었는데, 무라시게(반란) 따위를 속이는 전략이 과연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


 

노부나가는 우다이진이 된 이후부터 이에야스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미카와의 친척으로서 대하기보다 점차 '군주'와 '가신'의 관계를 강조했다. 사실 이와 같은 상황은 필연적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며, 따뜻하면 모여들고 추우면 가버리는 것이 사람이다. 특히, 진귀한 물건이나 멋진 사람을 보고 나면 기존의 것들은 시시해지기 마련이며, 이 때문에 세상에는 계약이 존재한다.(사람의 변심에 따른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 가령, 결혼이라는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뀔 수 있다. 노부나가 역시 인간인 이상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노부나가의 성격이나 기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다이진'이라는 자리가 만드는 중압감은 변했다. 이에 대해, 미츠히데는 평소대로 했지만 노부나가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 인생의 변곡점

도키치로를 히데요시로 만든 일등 공신은 '한베에'였다. 그러나 정작 한베에는 히데요시에 비해 월등한 삶을 살지 못했다. 히데요시는 한베에가 갖지 못한 두 가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한 가지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 무모함」이었다. 히데요시는 글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눈치로 사람을 평가했으며, 말이 오가는 가운데 상대방의 의도를 간파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히데요시는 상대의 사소한 행동도 예리하게 관찰하는 능력을 키워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남들의 기준에서 무모했지만  히데요시에게는 무모하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심지어 히데요시가 벌였던 일들은 대부분 좋은 성과를 냈는데, 모두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 덕분이었다. 히데요시는 남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재빨리 간파했기 때문에 무모하게 보였던 그의 행동에는 사실 자신만의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한베에보다 뛰어났던 히데요시의 나머지 강점은 `운`이었다. 히데요시는 확신이 들면 '운'을 시험하는 일을 종종 벌였다. 훗날, 주변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선과 명나라를 공격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도 '운을 시험하는 행동'이 한몫 했다. 그런데 왜 히데요시는 자신의 '운'을 그렇게 실험했을까? 아마도 농부의 아들에서 칸파쿠(천하인)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우연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히데요시에 있어 노부나가가 죽은 후의 삶은 그저 '덤'이었던 것이다. 

 


히데요시 :  인간이 너무 지혜가 뛰어나 앞을 내다보게 되면 무모한 일을 하지 못하게 돼.

따라서 그만큼 약해지기 마련이지. 그것뿐이야.

인생이란 간단한 거야.


 

 

 


| 선물이란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노부나가 : 미츠히데!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하게.

선물에는 그것을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게 마련이야.

성의가 없으면 허울좋은 것밖에 보내지 못해. 

              그렇게 되면 도리어 선물을 보내고도 속이 들여다보이는 결과가 되는 걸세. 
              놀라운 일이야! 과연 이에야스는 빈틈이 없어. 

 

평소에 근검절약을 신조로 삼는 이에야스가 이런 일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다니, 
              이에야스는 바로 이런 사람이야. 그대도 지면 안 돼!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관계는 흔히 볼 수 있는 약삭빠른 자들끼리의 화합이 아니었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와 자신을 '천하의 큰 멍청이'로 불렀다. '이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집단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같은 뜻을 목표로 형성된 집단은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다. 이에야스와 노부나가는 목표와 방향이 같았고, 이로써 노부나가는 이에야스를 믿고 서쪽을 평정할 수 있었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가 뭔가 다른 속셈을 내보이지 않고 굳건히 동쪽을 지켜낼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군웅할거의 난세에서 자신은 생각하지 않는 대신, 천하의 평정을 지향한다`

 

큰 목표는 현실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심지어 멍청하게 보일 수 있다. 가령, 이에야스와 노부나가는 서로 큰 멍청이처럼 행동했는데, 이에 따라 (역설적으로) 동맹이 유지될 수 있었다. 큰 멍청이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을 노부나가와 이에야스 두 영웅이 일관되게 추구했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뜻이 노부나가와 같다는 것을 선물에 담았다. 이에야스가 노부나가에게 보낸 선물은 주로 서쪽 평정에 힘이 될 수 있는 실리적인 선물이었다. 군량미나 전투장비를 보냈다는 측면에서 이에야스가 보낸 선물은 단순한 아부가 아닌 진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선물을 통해 이에야스가 자신과 같은 뜻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 천하를 훔치는 자

노부나가는 혼노사의 반란이 '미츠히데' 소행임을 알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물론, 작가(야마오카 소하치)의 평이겠지만 실제 노부나가의 마음도 비슷했으리라 짐작된다. 

 


노부나가 : 멍청한 놈, 천하는 너 같은 자가 쉽게 훔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커다란 때의 흐름과 그것을 딛고 일어설 자신의 견식과 힘이 하나가 되어야만

비로소 그 사람에게 맞는 영웅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미츠히데는 이 노부나가를 죽임으로써 다시 시대를 난세로 되돌릴 것이다.
더구나 난세로 되돌아간 세계에서 미츠히데는 고작 고실에 밝은 신경질적인 한 모장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쉰의 나이가 된 오늘날가지 미츠히데는 노부나가의 치닥거리밖에 못했던 게 아닌가.. 


 

천하는 단순히 '머리(지식)'와 '학식'만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츠히데는 노부나가 밑에서 '천하인'의 자리를 너무나 쉽게 생각하게 됐다. 노부나가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쉬워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천하라는 게 쉽게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스스로 화가 난 나머지 노부나가의 행동과 신념 그리고 운이 얼마나 강한지를 잊어버렸던 것이다.

 

불길에 뜻이 있다

 

노부나가의 죽음에 관한 야마오카 소하치의 평은 의외로 아주 간결하다.(반장 분량) 사실상 미사여구가 거의 없다. 노부나가는 모반을 꾀한 자가 미츠히데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죽음을 말했으며, 불길을 노려보며 한줌의 재로 사라졌다. 결국, 노부나가는 자신이 죽였던 에치젠의 승려들과 같은 길을 걸어갔고, 작가(야마오카 소하치)는 이를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했다. 아마도 노부나가라는 인물에 어울리는 어떠한 미사여구도 작가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노부나가의 인생은 중심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었으며, 매번 실속과 본질만을 정확히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직접 겪지않은 채, 단순히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시대의 혁신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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