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4편에서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최후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결론적으로 요시모토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지는 해는 마치 뜨는 해와 비슷하다. 예나 지금이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서 망하거나 죽는 자는 대부분 '지는 해와 뜨는 해'를 착각했던 경우가 많았고, 요시모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요시모토는 오다 가문이 공들였던 총포 부대의 강력함과 노부나가 특유의 실리위주 정책을 단순히 '어린아이의 수작' 정도로 착각했다.
도키치로(히데요시)의 재치
노부나가와 도키치로(히데요시)의 만남과 이들의 대화는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이었다. 이단아로 불렸던 노부나가의 행동과 상식을 파괴한 도키치로의 생각이 만나 폭발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냈다.
히데요시: 그것도 따지고 보면 여편네가 싫어서 도망친 거나 다름없어요.
정말이지, 예쁘기만 한 여자는 차라리 따뜻한 돌을 품는 것보다도 맛이 없어요
비천한 출신인 도키치로는 노부나가에게 자신의 방법(허풍)으로 아부를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성격은 괴팍하기보다 괴상한 점이 많았기에 도키치로(히데요시)가 웃기려 하면 씁쓸한 표정을 짓고, 허풍을 떨면 그냥 웃어넘겼다. 무서운 것 같으면서도 부드럽고, 격한 것 같으면서도 태평스러웠다. 게다가 노부나가는 도키치로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부터 기이한 행동을 시작한다.
노부나가 : 오루이! 그대는 아이를 낳을 수 있나?
이 노부나가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고 묻는 거다
오루이: 성주님의 아기라면 낳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노부나가: 그래? 그대는 키요스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라더군.
나는 아름답지 않은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좋아.
내일이라도 성에 오도록! 빠를수록 좋아.
원숭이! 어서 가자!
후손을 생각한 노부나가는 불현듯 3~4시간 동안 명문가 여성 세명을 순식간에 만났다. 노부나가와 여자들과의 대화는 흔한 남녀간 대화 내용을 벗어났으며, 기괴한 수준이었다. 노부나가는 오직 자신의 대를 잇는 아들을 낳을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와 관련된 질문만을 던졌다.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불쑥 등장하는 폭발적인 노부나가의 자신감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남녀 관계에서조차 '본질', '실체'와 같은 실리만을 따졌다. 노부나가의 입장에서 여자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네네)을 대체할 수 있는 도구였고, 실제 이와 관련된 질문을 퍼부었다. 이런 기괴한 문답은 세상의 보통 남녀 사이에서는 오갈 만한 문답이 아니었다. 노부나가는 도키치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엉뚱하고 개방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기이한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만일, 노부나가가 한 명의 여인만 성에 들였더라면 네네의 질투심이 폭발했을 것이다. 이를 간파한 노부나가는 동시에 세 명의 여자를 성에 들여 자신의 아이들을 함께 낳게 한다. 노부나가에게 있어 여자도 무사였던 것이다. 단, 전쟁터에서 싸우는 무사가 아닌 '대를 잇는 기술을 가진 무사'였다. 그리고 도키치로(히데요시)는 무사를 얻는 것처럼 여성과 대화하는 노부나가의 기이함에 더욱 신비감을 느꼈다.
도키치로의 철학
도키치로는 말이 많았지만 그의 말에는 의외로 뼈가 있었다. 노부나가는 도키치로의 핵심을 찌르는 언변이 마음에 들었기에 도키치로는 고속으로 승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도키치로는 종종 자신의 인생관이 드러난 말을 하녀들에게 하곤 했다.
도키치로 : 좀 모자라는 녀석은 입으로 후후하고 숨을 쉬기 시작했을 때에야 겨우 머리를 쓰기 시작하지.
하지만 그건 너무 늦어!
물고기도 입을 뻐끔거리기 시작하면 이미 죽을 날이 가까웠을 때야.
그런데 좀더 얼빠진 녀석들은 머리란 죽은 뒤부터 쓰는 것인 줄 알고 있거든.
이봐, 머리는 살아있을 때, 그것도 코로 숨을 쉴 때 써야만 하는 거야!
하녀: ...
도키치로 : 나는 마구간 당번이었을 때 어떻게 하면 말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심했어.
말과 이야기할 수 없으면 훌륭한 말지기가 되지 못해.
결국,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사흘 만에 말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게 됐어
하녀 : 짚신을 들고 다닐 때는 짚신의 이야기도 기억했겠군요? 호호
도키치로 : 바보 같은 것! 짚신이 어떻게 말을 하겠어?
그때는 매일 아침 남보다 일찍 일어나 짚신을 등에 대고 따스해지게 만들었지.
배에 대면 배탈이 나니까
하녀 : 호호호, 그럼 산림을 지킬 때는 무얼 했나요?
도키치로 : 그야 어려울 것 없지.
도벌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인간이란 말이야,
윗사람의 눈을 속이고 주인의 물건을 훔치려고 하는 근성.
이것이 있으면 출세하지 못해. 모두 명심하도록!
도키치로의 인생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노부나가의 말지기가 되었을 때는 말의 언어를 알아 들으려 했고, 노부나가의 짚신을 들고 다닐 때는 짚신을 따뜻하게 데웠다. 도키치로의 사고를 분석해보면 아래와 같다.
상황 X1 ==> | 결과 A+ (요인: k12) A (요인: c18) A- (요인: z24) B+ (요인: b34) B (요인: r11) ... F (요인: t44) |
상황 X2 ==> | ? |
위와 같이, 상황 'X1'과 각 요인들에 의해 A+ ~ F 까지의 결과를 가정해보자. 만일 여기서 가장 좋은 결과가 'k12'가 된다면, X1 사건 이후부터 사람들은 'k12'를 정석처럼 따르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훌륭한 질문과 동시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t44는 실패한 전략인가?」
상황 X2는 X1과 언뜻 보기에 비슷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연히 A+ 결과를 얻을 수 있는 k12와 최소 z24 수준의 전략을 선택한다. 그 결과, 모두 더욱 평범한 결과를 맞이한다. 또한, 단편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k12를 X2, X3, X4 ..... 모든 상황에 대입하려 한다. 반면, 뛰어난 자들은 이렇게 선택하지 않는다. 그들은(비범한 사람) 'k12 ~ t44' 요인들을 동등한 수준과 가중치로 계산한다. 그래서 뛰어난 자들은 어느 순간 최고점에 오를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z24 ~ k12를 선택하다보면 결국 전체가 획일화되며, 이에 따라 변화의 움직임이 싹터(변화 갈망) 't44'와 같은 전략이 다시 A+가 되기 때문이다.
도키치로나 노부나가에 있어 '절대적 법칙'은 없었다. 상황에 따라 선택할 뿐이었다. 도키치로는 말지기로 있을 때 말의 언어를 알아들었고, 고속 승진을 했다. 반면, 하녀와 같은 사람들은 '말지기로 성공했을 때'의 요인을 그대로 짚신에 대입하는 사고방식이었다. (말도 안 되지만 현실에서는 짚신에게 말을 걸라는 식의 초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로 넘친다) 도키치로와 같은 자들의 사고력은 하녀 유형보다 생각이 훨씬 유연하다. 짚신을 들고 다닐 때는 '짚신의 주인'인 노부나가의 상황에 맞춘 대안을 제시하며, 이는 '본질적 사고'에 해당한다. 상황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그대로 '노부나가'다. 이와 같이, 본질에 핵심을 두고 상황을 바라보면, 틀에 벗어난 대안들을 도출해 낼 수 있으며 이때 정답은 없다. 본질을 충족하는 대안이 상황과 맞아떨어지면 그것이 바로 정답이다.
세상에는 도키치로처럼, '본질적 사고'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뒤에 나오는 '시바타 곤로쿠'처럼 철저하게 '현상'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전자의 사고는 개방적이며, 후자는 방어적이다. 난세의 영웅은 대체적으로 개방적 사고력에 능하며, 치세의 영웅은 방어적 사고력이 강하다. 게다가 도키치로의 경우에는 글을 배우지 못했기에 눈치가 빨랐고, 언어의 현란함에 구속받지 않았다. 그 덕에 언어보다 실체 그리고 본질을 볼 수 있는 감각이 뛰어났다.
시대의 변화는 친절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와 흐름은 언어가 아닌 직감에 있다. 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본질&실체)이기 때문이다. 도키치로는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사람들의 마음(본질)을 파악하려는 습성이 거의 동물적이었다. 정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이다. 그래서 도키치로의 스타일은 독특했다. 노부나가의 가신 중에도 아부를 잘 하는 부류가 많았지만 '도키치로'에게는 시바타, 사쿠마 등 중신들이 갖추지 못한 천진스러움이 있었다. 남의 비위를 잘 맞추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경박하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 말만 잘하는 것으로는 롱런할 수 없다.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능력과 수완이다. 히데요시는 능력과 수완에 있어서는 넘치는 수준이었다. 둘째는 후천적인 소질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한다. 흔히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운'이다. '운'을 타고나지 않은 자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무리를 하게 된다. 실제 노부나가는 은근슬쩍 도키치로의 '운'을 시험했다. 가령, 몰래 음식을 먹고 있는 도키치로를 호통치며, 그가 몰래 먹어치운 식기의 그릇에 뚜껑을 덮어서 가져오게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노부나가가 먹을 그릇의 뚜껑을 열어서 도키치로가 먹다 남은 음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폈다. 그런데 도키치로는 유별나게 불운을 피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도박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상경에 앞서 오다 가문에 '굴복'을 강요했다. 이에 노부나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칼에 거절하며, 전면전을 준비한다. 오다 가문은 이마가와 가문의 5분의 1 정도의 규모였는데 보기에 따라 무모한 전쟁이었으며, 노부나가의 결정은 도박과 같았다. 보통, 리더가 도박과 같은 결정을 내리면 '극과 극'으로 편이 갈라진다. '인생 전체를 걸고 하는 도박처럼 신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와 '극도로 몸을 사리는 부류'로 순식간에 조직은 두 조각으로 나눠지는 것이다. 그리고 도키치로는 전자였다.
상대가 인생을 걸고 무모한 도박을 한다면 이에 맞서거나 따르는 사람 역시 모든 지혜를 다해 이 승부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을 거는 도박이라면 선택은 대개 두 가지다. 애초에 도박판을 빠져나가든지 아니면 올인이다. 도키치로는 질주하려는 노부나가에 올인했다.
도키치로 : 앞으로는 세상이 변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있던 학문 따위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통용되지 않는 것을 몸에 익힌다면 허리가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죠.
그러므로 저는 나 자신이 바로 학문이라 굳게 믿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재미있는 이유는 크기에 상관없이 '도박을 걸 만한 대상'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악 혹은 최상이 되건 일단 도박은 짜릿하다. 그리고 도박판에서 뭔가 재미있는 싹을 봤다면, 되도록 짓밟지 않는 것이 좋다. 꽃도 피기 전에 독초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도키치로는 노부나가를 재미있는 싹으로 생각했다. 그 싹이야말로 앞으로 밀어닥칠 세상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운명의 갈림길
노부나가 : 쿠니시게는?
하시스케: 미리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쿠니시게도 여기 가져다놓았습니다.
노부나가: 하하하 이겼어 원숭이!
하시스케까지도 내 마음을 정확히 읽었어.
이번 전쟁은 확실히 이겼어. 자~ 잔을!
싸움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야. 잘 봐둬라!
하하하 원숭이 따라와!
요시모토가 턱밑까지 이르렀을 때, 노부나가는 태평하게 낮잠을 자며 빈둥거렸다. 오다 가문의 충신들은 가문의 미래가 끝났음을 직감하고 포기한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요시모토는 드디어 오다 가문의 전략적 요충지에 발을 들여놓았고, 노부나가는 식사를 끝마치자마자 칼을 움켜쥐며 번개같이 출정했다. 도키치로는 춤을 추듯이 노부나가의 앞장을 섰다. 덴가쿠 전투가 있기 전, 노부나가는 그 급한 성미로 열흘 가량이나 꾹 참았다. 도키치로는 이때 노부나가의 심정을 생각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평소 자신의 성격을 이렇게까지(열흘 참기)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목숨을 걸어도 좋다는 각오로 도키치로는 노부나가를 쫓아갔다. 노부나가는 앞서 나가던 중, 신사 앞에서 대열을 정비한다. 노부나가의 출사표는 듣는 이의 등골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출사표
노부나가는 말 위에 일어서서 갑옷 옆구리에서 반짝 빛나는 사슬 같은 것을 꺼냈다.
노부나가: 모두 이것을 똑똑히 보아라!
병사들: 아아 염주..
노부나가: 그렇다. 염주다. 은으로 된 큰 염주다.(재빨리 목에걸며)
잘 들어라! 이것이 오늘 나의 각오다.
말 위에 있는 것은 이미 죽은 노부나가다. 알겠느냐?
병사들: 오오..
노부나가: 그대들의 생명을 나에게 맡겨라.
맡길 사람은 뒤로 물러서지 마라.
전쟁은 이제부터다!
목숨을 맡길 자들만 나를 따르라!
목숨을 건 노부나가의 출사표는 병사들로 하여금 스스로 칼을 뽑도록 만들었다. 노부나가는 은색 염주와 출사표를 읽으며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한편 요시모토 군에 관련한 정보를 기다렸다. 기습을 노리는 포식자처럼 일정 수준의 정보를 기다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노부나가 : 뭣이! 요시모토가 덴가쿠하자마에..
첩보병: 요시모토가 마을 대표가 들고온 술잔을 손에 들고
승전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며 춤까지 추었다고 합니다.
노부나가: 요시모토가 춤까지 췄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본대의 군사들은?
첩보병: 모두 분지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라 합니다.
노부나가: 수고했다. 이겼다!
기습의 귀재였던 노부나가였지만 6배 많은 요시모토 병력을 상대로 일전을 벌이기에는 무모했다. 단, 네네(부인)의 말처럼 상대가 술에 취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취객 4~5명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리고 네네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노부나가는 요시모토가 덴가쿠 골짜기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즉시 군사를 둘로 나누었다. 민첩성이 떨어지는 후방의 가짜 군사 1000명은 그대로 젠쇼사의 성채로 보내고, 자신은 엄선한 군사 1000명과 함께 요시모토의 본진으로 질풍처럼 내달렸다.(기병과 정병 그리고 허허실실의 조합)
노부나가 : 개인의 공을 앞세워 전체의 승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한 덩어리가 되어 적을 무찔러라!
요시모토 외 어떤 적장의 목도 베지 마라. 알겠느냐!
일동이 노부나가 말에 대답했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의 애마였던 '질풍'의 말머리를 곧추세우고 질주하고 있었다. 아마도 요시모토 군의 눈에 오다 정예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젠쇼 사의 성채로 들어가는 가짜 병사 1,000여명 만이 보였을 것이다. 노부나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병력을 오히려 더 줄였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10 년동안 정예병을 육성했다. 노부나가는 숨쉴 틈도 없이 키리하라 북쪽 언덕 기슭을 돌아 코사카로 향했다. 코사카에서 타이시가네를 넘어 이마가와 군의 오른쪽 배후를 쳐서 대번에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계산이었다.
노부나가는 부하들에게 휴식을 명했으나 자신은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주위의 풀숲을 바라보면서 하늘과 분지를 계속 관찰했다. 이윽고 뇌우가 몰아쳤다. 노부나가는 억수 같은 빗줄기 속의 번개를 기다렸다. 때마침 휘몰아치는 폭풍우는 술에 취한 요시모토의 병사들에게 있어 위기가 되었지만 노부나가와 같이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였다. 노부나가가 뇌우 속을 질주하는 사이 요시모토는 취해서 자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손바닥을 뒤집듯 요시모토의 본진을 장악했다. 놀랍게도 오다 병사들은 적의 본진을 직진으로 치고 들어갔다. 이런 기습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노부나가의 1000명이 요시모토의 하시모토(호위대)를 뚫고 들어간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이처럼 기적과 같은 사건은 승자의 저주나 강자의 방심에 의해 발생한다. 조심성 많은 요시모토는 거듭되는 승리에 취한 나머지 적지였던 골짜기 터에 병사들을 숙영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 게다가 노부나가의 알 수 없는 카리스마는 요시모토의 기질과 상극이었다. 노부나가처럼 평소에 내심을 알 수 없는 리더가 갑자기 하나에 집중하면, 불가능도 가능하게 할 것 같은 카리스마가 표출된다. 결국, 요시모토의 방심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리는 마중물이 되었다.
실리만이 살길
요시모토의 몰락은 '노부나가' 외의 또 한명의 영웅을 탄생시켰다. 바로 모토야스(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가문을 공격하는 선두를 지휘하게 되었지만 요시모토가 죽자마자 재빨리 행보를 변경했다. 이에야스는 셋사이 선사가 죽기전에 남긴 말을 늘 되씹었기 때문에 어려운 선택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버려야 얻는다
요시모토가 사라진 이마가와 가문의 미래는 어차피 바람 앞의 촛불이었다. 오다 가문은 '뜨는 해', 이마가와 가문은 '지는 해'였다. 그리고 불운은 행운에 집착할수록 더욱 빨리 찾아오는 법이다. 이에야스는 셋사이 선사의 가르침대로 '버림의 철학'을 그대로 이행했다. 그래서 오카자키 성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가 있었다. 또,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탱해준 '행운'이라는 막연한 환상도 버렸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조차 내려놓았다. 이렇게 자신을 부정한다면 사실 남는 게 없다. 그야말로 무한하고 정적인 '무(無)'만이 남는다. 셋사이 선사가 이에야스에게 남기려고 한 것은 '무(無)'였다.
결국,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죽음으로 향한다.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무너지거나 사라진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무(無)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야말로 가장 완벽한 상태다. 오다 가문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며 일어서고 있을 때, 인질로 잡혀있는 이에야스의 존재는 미미했다. 셋사이 선사는 이에야스가 일본 전체를 통일하는 그릇이 되길 원했다. 어느 세력과도 부딪치지 않고 품어버릴 수 있는 '무의 경지'에 이에야스가 이르기를 갈망했고, 그 씨앗(질문)을 심어주고 떠난 셈이다.
그리고 셋사이 선사의 유훈에 따라 이에야스는 큰 그림을 그렸다. 요시모토의 죽음은 이에야스가 조용히 실력을 기르며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무의 경지'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때(요시모토의 죽음)까지 셋사이 선사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버거웠으며, 이후 다케다 신겐과의 싸움(신겐의 죽음), 노부나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히데요시의 허무한 죽음을 통해 이에야스는 드디어 '무의 경지'에 다다른다.
이에야스는 요시모토가 죽자 조용히 노부나가의 밀서를 기다렸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의 움직임에 크게 기뻐했다. 실리가 없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이에야스의 자세가 노부나가의 성격과 그대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노부나가 : 만일 내가 사자를 보냈다고 슨푸를 두려워할 정도의 모토야스라면
그 역시 무딘 칼이므로 상대할 가치조차 없어.
그때는 사자의 말대로 쫓아버리면 그만이야.
명검의 조건
노부나가는 요시모토와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사몬지'를 과감하게 잘라버렸다. 비록 최고의 명검이라 할지라도 수족 부리듯 사용할 수 없다면 필요없는 골동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요시모토는 자신의 완력으로 잘 다루지도 못하는 천하의 명검을 어설프게 휘두르다 목이 잘렸다. 반면, 노부나가는 요시모토와 달랐다. 그에게 있어 과거의 영광, 지식, 관습보다 '실리', '본질', '실체'가 우선이었다. 그가 얼마나 실리적인 성격이었는지 '사몬지'와 관련된 아래의 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노부나가 : 자기 역량에 맞지 않는 것은 명검이 아니라 도리어 활동하는 데 방해가 되지.
예리한 칼의 차이는 잘 벼리고 못 벼리는 차이뿐 아니라, 그 칼을 지니는 사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도 해. 알겠나, 내 말을?
이 칼을 두자 한 치 닷푼이 되도록 고쳐라
도키치로: 네?
노부나가: 이 멍청아, 무딘 칼을 명검으로 바꾸려는 거야!
이 노부나가는 네치 닷 푼을 아끼려다 칼을 주체할 수 없게 되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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