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역사소설

「오다 노부나가 6편:: 나가시노 전투」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 이길진 옮김 | 솔 | 2016

by 도양강 2018. 12. 19.

「대장의 자세」

타케다 신겐은 비록 적장이었지만 자신의 운을 향해 그대로 돌진하는 이에야스를 존중했다. 하지만 신겐의 아들(가츠요리)은 아버지와 달랐다. 신켄이 죽고난 뒤부터 가츠요리는 자신의 용맹만을 믿고, 무모한 전쟁만을 벌이다 자멸했다. 야마오카 소하치는 가츠요리의 비뚤어진 성격이 아버지의 그늘 때문이었다고 평했지만 사실상 가츠요리의 문제는 비단 성격에 국한되지 않았다. 

 


가츠요리: 노부나가에게 배신당하고 정실한테까지 버림을 받았으니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말로입니다.

노부나가에게 신의가 있어 원군을 보낼 줄 알았던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지요.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케다 신켄 : 가쓰요리! 총대장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돼. 
무장은 언제나 자비를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이에야스가 명예롭게 죽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 이쪽의 도리야. 


리더의 경우, 어리석은 것보다 큰 죄는 '흐름을 읽지 못하는 안목'이다. 아쉽게도 가츠요리는 흐름과 사람을 읽지 못했다. 이런 면에서 가츠요리와 가장 비교되는 인물은 '노부나가'였다. 노부나가는 흐름과 사람을 읽는 안목이 뛰어났다. 그토록 포악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노부나가 쪽에 구름처럼 몰려든 이유는 노부나가의 태도가 '사람'이라는 '한 점'을 지향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신겐은 가츠요리에게 사람을 읽지 못한 부분을 매번 지적했다. 사람에 대한 노부나가의 태도는 대략 아래와 같았지만 가츠요리는 그렇지 못했다.

 


나가요시 : 저어, 대장님의 신을 가네마쓰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노부나가: 멍청한 놈! 아시나카는 대장이 신는 게 아니야. 아시가루(농부)들이나 신는 게지.
그러나 유사시에는 이게 가장 편리해.

 

그래서 나는 젊어서부터 아시나카 두세 켤레를 허리에 차거나
칼집에 묶어 가지고 싸움터에 나갔어. 
너는 맨발이 아니냐. 맨발로는 오래 달리지 못한다.


그것 보아라. 발이 빨갛게 붓지 않았느냐. 그러기에 조급한 녀석이라고 했지.
알았으면 아시나카를 신고 어서 달려가거라. 나가요시, 출발이다!


 

 

 

 


「고집」

히사마사는 차를 마시고 새삼스럽게 쓰루와카 다유에게 북을 치게 하여 춤과 노래를 즐긴 뒤, 이튿날인 28일(덴쇼 원년8월) 사시(오전 10시)에 할복했다.

 

인간을 떠받치는 고집이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보면 위대하다. 하지만 고집이 '대의'가 아닌 단순히 자신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의미가 희미해진다. 자신의 명예만을 생각하는 고집은 이기주의다. 이성의 강한 뒷받침을 받는 자아의 주장으로서의 고집이 진정 위대한 고집이다. 그러므로 무사의 '고집'역시 어디까지나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남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되어야한다. 진정한 무사도는 '남을 살리기 위한 희생 정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히사마사는 그렇지 못했다. 히사마사는 무사도의 정신에서 목적과 수단을 망각했다. 그는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키기 위해 당연히 생각해야 할 손자와 가신들의 생명을 무시했다. 히사마사의 선택은 가문의 멸망과 동시에 손녀딸(훗날 챠챠히메)을 평생 지옥에 가둬버린 씨앗이 됐다.(히데요시의 첩)

 

 

 

 

 

 

 


「방심은 가장 큰 균열이다」

노부나가가 교토로 진출하자마자 '아사쿠라나 아사이' '다케다' '혼간 사' '에이잔' '미요시'  '마쓰나가' '아시카가' 등이 모두 속내를 드러내고, 노부나가에 덤벼들었다. 노부나가의 우군은 '미카와의 친척', 오직 이에야스밖에 없었다. 노부나가가 교토에 입성한 지 불과 3년 6개월 만에 신겐은 죽고 에이잔은 불탔으며,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완전히 무너졌다. 아사쿠라 요시카케, 아사이 부자는 멸망했다. 남아 있는 건 혼간 사 뿐이었다. 노부나가 입장에서 교토의 봄은 일장춘몽에 불과했으며, 꽃놀이를 즐길 새도 없이 동쪽의 우에스기와 모리, 남쪽의 시코쿠와 큐수를 모두 평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사람의 본성은 위기에 드러난다. 이때 쓰러질 것 같아도 계속 달리는 사람은 강하다. 그리고 세상은 강한 사람을 독한 사람이라 부르며, 또 독한 사람은 쉽사리 무상감에 젖지 않는다. 노부나가는 결코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친족이었던 나가마사마저 제거하며, 여동생의 오열과 아끼던 사위의 죽음 앞에서 약해질 수 있는 자신에게 더욱 채찍질을 가했다.

 

 

 

 

 

 

 

 


「전쟁의 기술」


노부나가: 유능한 기술자가 많을수록 평화는 빨리 오는 거야. 

유능한 기술자를 빨리 육성하도록 하라.

이럴 때(난세)일수록 남이 깨닫지 못하는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


 

중앙을 굳게 지키면서 정확하고 착실하게 장애를 하나씩 제거하려면 무엇보다도 새로운 전술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써 노부나가는 철포의 개량에 몰두했다. 당시, 다이묘라면 누구나 오십 자루나 백 자루의 철포는 갖고 있을 정도로 이미 철포는 일본에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모두 이 철포의 위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포만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전술까지 개발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노부나가만이 철포만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새로운 방식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나가시노 전투다. 나가시노 전투는 전쟁을 바라보는 노부나가의 새로운 시각이 외부에 드러난 혁신적인 사건이었다. 어릴 적부터 철포를 갖고 놀았던 노부나가는 항상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저격하는 전법보다는 숫자로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총이 전면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강력한 전술은 타케다 신겐의 '기마부대'를 활용한 '어린진'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노부나가는 다케다의 기마부대를 상대할 수 있는 현대의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생각해냈다. 노부나가의 생각은 무려 500년 앞서 있었으며, 그 당시 '미사일'을 생각했었다는 사실은 무척 놀라운 일이다. 노부나가는 철포대를 주력으로 하는 삼천이나 오천의 대부대를 선봉에 세워 2교대, 3교대로 적의 백병전을 저지할 수 있는 전술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주력으로 철포부대를 내세우는 방식은 일본의 전쟁사를 모두 바꿔버린 혁신이었다. 

 

 

 

 

 

 

 


「나가시노 전투」

노부나가는 가츠요리를 제거해야만 했다. 가츠요리가 차지한 곳은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교두보였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가츠요리는 타케다 신겐이 자리잡은 천연 요새에서 나오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가츠요리를 불러낼 계책을 마련하기 위해 히데요시의 계책에 따라 다카텐진 성 같은 곳 한두 군데를 일부로 빼앗겼다. 가츠요리로 하여금 수세에서 공세를 취하도록 만든 뒤 언제든지 유인해내어 싸울 수 있는 태세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나가시노 전투는 노부나가가 허술한 방책을 쌓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부나가는 다다쓰구에게 적의 후방(퇴로)을 차단하고 앞에서 작은 공격을 지시했다.(20기 정도의 철포 부대가 총을 쏘는 수준) 사실, 적의 퇴로를 차단해놓고 앞에서 슬쩍 공격한다는 것은 예사로운 전술이 아니다. 뭔가 있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자신감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다케다 가문의 백전노장의 장수였던 '사부로베에'는 순간적으로 이 점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노부나가는 허술한 방책 앞에서 가츠요리의 병사들을 자극했고, 방책을 부수려 달려나간 2,000 여기의 야마가타 군은 불과 삼십 초도 안 되는 사이 즉사했다. 드디어 철포 부대를 백병전에 사용한 전술이 드러난 셈이었고, 일본 전쟁사는 일순간에 뒤바꼈다.

 

나가시노 전투

 

 

 

 

 

 

 

 


「시대의 흐름」

"요시아키 놈, 혼간 사와 손잡고 모리, 우에스기와 동맹을 맺으려 하는구나"

 

시대의 바람은 언제나 큰 나무에 강하게 불어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부나가의 입장은 난처했다. 가츠요리를 철저히 분쇄한 탓에, 도리어 「우에스기 겐신」이라는 뜻하지 않은 강적을 불러들이게 됐던 것이다. 노부나가가 에치젠의 승려들과 무고한 백성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배경에는 '겐신'이라는 강력한 상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겐신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묘한 기골을 가진 무장이었다. 다케다 신켄이 소금 부족으로 고민할 때 일부러 적에게 소금을 보냈으며, 신켄의 죽음을 듣고, 밥을 먹다 말고 젓가락을 놓고 낙담했던 기묘한 인물이다.

 

겐신은 철저한 선의 신봉자였다. 어차피 이 세상에는 전쟁이 따르기 마련이며, 겐신은 그 자체를 즐기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승려이자 무인이었다. 따라서 겐신의 싸움은 언제나 공방을 즐기는 무욕의 일환이었으며, 추악한 야심의 검은 그림자를 극도로 싫어했다. 이는, 일종의 전쟁 결벽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겐신은, 신겐을 마치 야전 놀음의 훌륭한 상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신겐이 죽었으니 이제 전쟁놀이 상대는 노부나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부나가에 있어, 겐신은 참으로 엉뚱한 상대의 출현이었다. 굳이 싸워야 할 이유가 없었고, 또 이겨본들 얻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노부나가의 목표를 가로막는 엉뚱한 상대가 또 있었다. 바로 에치젠 승려들이었다. 이들은 겐신과 달리 너무나 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철저하게 겐신과의 싸움을 피하며, 에치젠의 승려들을 경계했다.

 


노부나가 : 두 번 다시 반란 같은 것은 일으키지 못하게 철저히 부수겠어

에이잔, 나가시마 이상의 섬멸 작전, 이런 싸움에서 그대와 같이 소심한 자는 없는 편이 좋아


 

에치젠 승려들에 대한 노부나가의 잔혹한 처사에 미츠히데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미츠히데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일 노부나가가 진격하지 않으면 겐신이 후방을 공격할 게 뻔했다. 그러므로 노부나가는 겐신이 나오기 전에 에치젠을 강력하게 제압하여 자신의 세력을 굳게 지켜야하는 입장이었다.

 

노부나가는 우에스기 겐신에 총력을 다하는 것처럼 진출했지만 실제로 '지리멸렬 전략'을 사용하며 재빨리 돌아왔다. 겐신과의 전투를 위해 출전한 장수들은 잠깐 흩어졌다 다시 모였고,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약한 가가와 에치젠을 공격했다. 만일, 노부나가가 가가와 에치젠을 순식간에 없애 버린다면, 아무리 강한 겐신이라 할지라도 혼자만으로는 노부나가를 상대하기가 벅차게 된다. 도쿠가와 군에 대한 경계가 허술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부나가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겐신은 노부나가와 싸우지않고 그대로 물러났다. 비사문천(겐신)은 국지전에서 승리하는 것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이다. 반면, 노부나가는 일본 전체를 차지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겐신의 마음을 읽어내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상대보다 더 큰 뜻을 품은 자는 더 큰 포부의 전략을 펼칠 수 있으며, 상대의 수를 읽어내는 것에 유리하다.  

 


나도 벌써 마흔 둘일세. 내 마음뿐만 아니라 남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어.
여기에서 노부나가가 한 번도 싸우지 않고 물러간다.
그렇게 되면 이기지 않고는 못 견디는 비사문천도 만족할거야.
그는 평소처럼 에치고로 돌아갈 걸세


 

 

 

 

 

 


「앞서가기 위한 휴식」


노부나가 : 오늘부터 나는 그대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하겠어.
있는 것 모두를 기묘마루에게 깨끗이 주고 나서 그대의 집에서 설을 맞이하겠어


 

느닷없이 혼자 성을 나와 가신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자처하는 노부나가의 생각은 기상천외했다. 노부나가는 마음을 비우고 싸우는 비사문천(겐신)이었다. 따라서 평소와 다른 전략이 필요했고, 주변부터 바꿨던 것이다. 겐신과 싸우려면 겐신에 맞는 전략이 필요했기에 노부나가는 자신을 무시하는 겐신의 사자 앞에서도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순수 전투를 즐기는 마음) 겐신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원래 말과 행동에 있어 추호의 거짓이 없다면 상대가 비록 적이라 할지라도 그 무례함에 화가 나지 않는 법이다. 

 


노부나가 : 멍청한 것들! 노부나가는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또 한번 벌거숭이가 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거야. 

 

이번 상대는 스스로 비사문천의 화신이라 믿는 불범의 겐신. 

이 노부나가의 마음에 추호라도 상대에게 뒤지는 그림자가 있다면 싸우기 전부터 진 것이나 다름없어


 

겐신에게는 겐신의 철학이 있고, 노부나가는 노부나가의 맹세(대망)가 있다. 노부나가는 인생의 강력한 기운 앞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하는 자세를 자주 보였는데 겐신과의 승부 역시 비슷하게 대처했다. 먼저, 벌거숭이가 되어 겨뤄볼 생각으로 '밑바닥 정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겐신은 노부나가와 싸우기도 전에 죽는다. 어처구니 없게도 밤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다 갑작스런 심혈관 질환으로 유명을 달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