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의 연금술 -1편-」

|성공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다. 버티는 자가 이긴다. 어떤 분야든지 버텨야 기회가 찾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쉽게 이기는 것'이다. 자신의 계획과 예상대로 일이 착착 맞아떨어져 쉽게 이기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일이란 항상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쉽고 빠르게 이긴 사람보다 버티면서 기회를 얻어 이긴 사람이 세상에 몇만 배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가령, 성공한 셀럽들의 경우에도 길고 긴 무명의 시간을 버텨냈기에 현재 그 위치에 설 수 있다. 버텨낼 수 있는 것, 사실 이것이 바로 성공의 정의이며 진정한 승리다. 무슨 일이든지 포기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면, 다시는 무대에 설 기회를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이길 필요는 없다. 대신 버티는 데 집중하라. 버티다보면 힘이 붙고, 또 힘이 붙으면 이긴다. 어차피 승리와 패배는 앞으로의 삶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벤트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한, 3할을 노리며 성공 확률 80퍼센트에 달하는 슛을 던지면 그만이다. 혹시 "여기서 포기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 대신 "여기서 어떻게 더 버틸까?"를 생각해보자. 사실 이것이 현명한 사람의 선택이며 숨은 비결이다. 포기를 고민하는 자는 '상처'를 받지만, 버티기를 궁리하는 자는 '답'을 얻기 때문이다. 

 

한편, 성공하고 싶다면, 절대 '포기'를 미화하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포기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제 난 포기할거야'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포기라는 단어보다 훨씬 그럴듯하게 들리는 다양한 표현을 찾아내 사용한다. 그들은 타협과 합리화의 달인들이다. 

 


"열심히 했으니깐 됐어"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지"

"도전해본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어"

"이 정도 한 게 어디야? 다음엔 좀 더 잘해보자"


 

위의 표현들은 포기를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들이다. 언뜻 듣기에 모두 위안이 되는 표현이며,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위와 같은 표현들은 모두 변명과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성공하려고 결심했다면, 결코 포기를 미화하지 마라. 포기는 그냥 포기일 뿐이다. 포기에 변명을 덧대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왜곡되게 인지한다. 정말 열심히 했으며, 최선의 노력으로 지금 여기까지 왔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버텨라. 그러고나서 일단 끝을 맛보면, 정말 삶이 달라진다. 끝에 도착하면, 전혀 상상도 못한 것들이 기다린다. 또, 정상에 도착하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가장 높은 곳에서 전체를 올바르게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로소 지난 날 '겨울'에 대해 그리고 '여름'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며, 포기가 아닌 '잠시 멈추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를 할 수밖에 없다면, 포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냉철하게 분석하며, 포기를 한 것에는 그 어떤 미련도 가져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깨끗하게 단념하는 것이다. 그런 이후, 전보다 더 많이 행동하며, 더 열심히 일하면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포기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확신이다.

 

정상에 선 사람들은 모두 확신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

 

 

 

 


 |인내심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출발선에 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

 

「올림픽 우승자의 전략 | 첨단 소재로 만들어진 운동화 | 마라톤에 관한 해박한 지식 | 탄탄한 근육과 폐활량」

 

위의 요소들은 본질이 아니다. 답은 '인내심'이다. 인내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성공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망은 크지만 대가 지불에 인색한 사람의 삶은 빈약하다. 아무 것도 지불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버티지 못한다. 그저 어둠 속을 이리저리 헤맬 뿐, 어둠이 가장 깊어지면 아침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예컨대, 정상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 결과, 대가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찾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어떠한 목표를 결심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이후, 그 대가를 지불할 능력과 의지가 자신에게 있는지 냉정하게 검토한 후, 부족한 것들이 있다면 하나씩 채워나간다. 만일,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최대한 장기적인 생존전략을 세워 처음부터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면 된다. 그러면 결국 버티는 데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이 닥치면 쉬운 길(고효율성)을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가-성공'방정식을 극복하는 순간, 부서질 것 같은 유리 멘탈이 황금으로 바뀌며 삶의 모든 것이 놀랍게 바뀌는 기적을 목격하게 된다.

 

 

 

 


|성장

가벼운 아령으로는 근육을 키울 수 없다. 시련과 고통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과제일 뿐, 과제가 많다면 성장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며, 과제를 해결할 때마다 그만큼 강해지고 성장한다. 무엇이 어려운지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어려움은 두려움의 막연한 대상이 아니라 극복 가능한 구체적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다면, 피하려하지 말고 정면돌파를 선택해야 한다. 어차피 고통은 지속되지 않는다. 고통에는 기승전결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체육관에서 러닝 머신을 뛰어본 경험이 있다면, 초반 1~3키로미터 구간이 가장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다 3킬로미터쯤 지나면 죽을 것 같던 호흡이 점차 안정을 찾으며, 허벅지를 찌르던 통증에 점점 무뎌진다. 심지어 뛰는 게 상쾌하다. 고통은 바로 이 지점까지다. 고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가중치가 매 순간 달라지며, 고통의 한복판을 지나 마지막으로 갈수록 가중치는 작아진다. 사실, 부정적인 일이란 없다. 다만 부정적인 감정만이 남아 스스로 부정적인 일을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고통을 받아들여 한 가지 일에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고통의 한계선이 사라지며, 흥미진진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얕은 바다에 사는 흔한 물고기들이 아니라 깊은 바다에 사는 (아무도 모르는) 심해어를 만날 때, 비로소 새로운 삶에 눈을 뜰 수 있다. 밥 먹듯 포기하며,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유목민은 성공과 거리가 멀다. 한 곳에 깊숙이 뿌리 박는 정착민이 되어야 한다. 

 

 

 

 


|행동

우리가 피나게 노력하여 얻어야 할 것은 사실 성공 그 자체가 아니다. 인생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성공을 가능하게 만드는 좋은 사이클(루틴)'이다. 이 좋은 사이클을 만드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포기를 모르는 멘탈'이며, 또 좋은 사이클이 좋은 멘탈을 만든다. 즉, 생각이 행동을 만들게 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행동이 생각을 만들게끔 해야 한다. 예컨대, 오랜 생각 끝에 나온 행동은 장고 끝의 악수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좌절감이나 무력감에 빠져있다면 즉시 (작게)행동부터 해야한다. 뭔가 일을 벌이고 실행하는 동안 멘탈이 점차 강해지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편, 즉시 행동에 나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변 환경과 조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그것들을 나의 방향으로 끌어당겨서는 안 된다. 자신이 먼저 그쪽으로 달려가야 한다. 산을 옮기려면 직접 산으로 가야지, 산이 먼저 다가오는 경우는 없다. 괴테의 말처럼, 인간은 모두 무언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 누구도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런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해서 결코 더 나은 상황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기다려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의 상황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의 상황임을 명확히 인식해야만 포기의 유혹에서 벗어날 힘을 얻을 수 있다. 

 

 

 

 


|추진력

포기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는 '추진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추진력이 높은 사람은 주변 환경과 조건에 그다지 간섭을 받지 않으며, 낯설고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려도 그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가령, 기차를 생각해보면, 폭주하는 기차는 벽도 뚫고 지나가는 반면, 정지 상태의 기차는 바퀴 앞의 작은 쐐기에도 출발할 수가 없다. 심지어 아무리 출력을 높여도 결과는 같으며,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늘 움직이지 않으면, 다시 말해 추진력이 없으면 아주 사소한 장애물 하나가 인생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반면 추진력이 작동하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방해물도 별 문제가 되지 않고, 거침없이 뚫고 지나갈 수 있다. 이 때문에 루틴이 필요하며, 또 추진력이 생길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인내심이 중요한 것이다. 즉, 새로운 일을 할 때는 최대한 빨리 추진력을 확보해야 한다. 정지해 있는 차를 조금이라도 밀어내는 일에 젖먹던 힘까지 써야 한다. 일단, 바퀴가 구르기만 하면, 목표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훨씬 쉬워진다. 하지만 추진력이 높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핑계를 댄다.

 


"시험 삼아 해보지 뭐"

"경험 쌓는다 생각하자"

"그래봤자 어차피 월급쟁이 인생인데, 열심히 해봐야 사장 배만 불릴 뿐이야"

"완벽한 전략이 완벽한 실행을 만들지"


 

 

'시험 삼아 해보는 것', '경험을 쌓기 위해 해보는 것'은 모두 아마추어적 발상이다. 이는 '저는 아마추어예요 여러분!'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도 이해해달라고 부탁하는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어떤 일을 하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어디로 굴러갈지는 일단 바퀴를 굴려놓은 다음 그 방향을 살피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주변에는 '최선을 다했지만...'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사람, 있는 힘을 모두 쏟은 사람은 결코 변명의 말을 하지 않는다. 정상에 서고 싶다면, 어떤 경우에도 시험 혹은 경험 삼아 해보겠노라 말해서는 안 된다. 경험 삼아 해보는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겠는가? 변명이 두둑한 사람은 결국 두터운 신뢰를 받지 못한다. 시험 삼아 해본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프로는 일을 시작했다면, 반드시 성공을 기대한는 반면, 시험 삼아 해보는 사람은 뭔가 방해물이 끼어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한편, 추진력은 항상 뜻밖의 결과를 창출한다. 결과는 언제나 바뀐다. 결과는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일이며, 아무도 모르는 일을 한다는 것은 무모하고 두려운 시도가 아니라 흥미진진한 모험이다. 따라서 결과가 아닌 추진력에 집중해야 한다. 추진력을 확보해 놓으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방법과 길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전략이 나타나며, 또 추진력을 통해 전략은 전술로써 보강, 수정, 개선, 발전되어 나간다. 추진력은 전략과 전술을 완성해나가는 상호보완적 관계이므로 우선 속도부터 내야 한다. 속도를 올리면, 거기에 맞게끔 나머지 일들도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그러므로 이것저것 재는 데 힘을 쓸 시간에 속도부터 올려놓으면 나머지 부차적인 고민거리들은 저절로 해결된다. 물론, 여기에는(의미 있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일단 일이 진행되기 시작하면 본인 외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 일을 중단시킬 수 없다.

 

5년 후가 아니라 5분 후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라. 여기에 거창한 구호는 필요 없다. 오직 전진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얻는다. 반면, 나쁜 습관에 대한 추진력을 키우면 삶은 추락하며, 좋은 습관은 점차 좋은 결과를 낸다. 어느 영역에서 추진력을 키울 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믿음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믿음'에 달려있다. 승자에게는 '확신'이 있고 패자에게는 '의심'이 있듯, 승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지니고 있다. 또, 늘 의미를 찾고, 현재의 자리에도 각별한 의미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의미는 곧바로 인식되지 않기에 항상 그 의미를 의식적으로 찾아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실패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설명을 요구한다. '눈에 보이는지', '어떻게 된 건지', '어디에서 또 어디로 가는지', 등.. 명쾌한 증명과 설명이 없다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충분한 증명과 설명이 주어지더라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그들은 애당초 아무것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하려면 먼저 눈을 떠야 한다. 눈을 뜨면 의심이 사라지고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믿음은 단순히 의심스러운 것을 명확히 해소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의심 자체를 지워낸 자리다. 이때, 의심은 사람을 쉽사리 지치도록 만들며, 의미를 찾는 작업은 생산적인 피로감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인내력이 강한 장인들은 의심이 아닌 믿음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실패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도 오직 하나만은 철석같이 믿는다. 바로 '불행'이다. 이들의 유일한 믿음은 '불행'이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차 있다. 그래서 포기하는 사람은 버텨내는 사람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편, 우리는 언제나 출발점에 서 있다. 삶에는 언제나 출발점만 존재한다는 사실에 눈을 뜨면, 우리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인생에 늦은 때란 없으며,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반드시 삶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보석같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를 크게 성장시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자아인식'이 아닌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냉철한 판단 위에 자기자신에 대한 강건한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현실 인식을 넘어 현실 변화를 가능케 할 수 있다. 그러니 비관론자 편에 있어서는 발전이 없다. 긍정론자의 멘탈이 부정론자의 멘탈보다 변화, 성장, 목표 달성에 있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긍정주의자들은 안 될 이유보다 될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안 될 이유를 습관적으로 찾는 사람은(부정·비관론자) 계속 안 될 이유만을 발견할 뿐이다. 여기서 웃긴 점은 안 될 이유가 적중했다한들 달라지는 것도 없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예상이 적중했으니 기뻐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비관론자에게 성공이란 곧 퇴보가 되며, 성공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간에 되게끔 한다. 

 

 

 

 

 


|간절함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냥 원해서는 안 된다. 간절하게 그리고 통렬하게 원해야 한다.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목숨을 걸고 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취미 수준으로 전락한다. 삶은 누구나 딱 한 번 뿐이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불가능한 일에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불가능한 일에 다가서는 사람에게는 경쟁자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일찍 포기해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실패한 일들을 남들이 해낼까 두려워하며, '하지 마라', '금물이다'와 같은 조언을 남발한다. 반면, 성공한 사람들은 타인의 계획을 진지하게 여기고 존중하며,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조언을 한다. 요컨대, 부정적인 것들은 얻기 쉽다. 늘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것들은 얻기가 어렵다. 늘 우리가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간절하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제 품었던 나의 생각에서 나온다.

오늘 나의 생각은 내일 있을 나의 삶을 세운다.

나의 의식의 창조, 그것이 나의 삶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부정적인 의식을 지닌 채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에게는 고통이 뒤따른다.

이는 마치 마차 바퀴가 마차를 끄는 짐승을 뒤따르는 것과 같다.

 

반면, 어떤 사람이 긍정적인 의식을 지닌 채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에게는 기쁨이 뒤따른다.

이는 마치 그의 그림자가 그를 뒤따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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