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역사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29편 [야마오카 소하치.2015] 『오사카의 선택』

by 도양강 2019. 5. 3.

사람을 살리는 검법 「세키슈사이」

야규 집안은 쇼군의 검술사범을 배출한 가문이며, 야규 가문의 일명 '세키슈사이 검법'은 평화를 여는 검술로 통했다. 실제로 토요마사는 쇼군의 스승이었고, 사람을 살릴 수 있을 때에만 검술을 사용했다. 그래서 이에야스는 몰래 오쿠하라 토요마사를 오사카 성에 침투시켜, 유사시 히데요리와 요도부인 그리고 센히메를 구출할 것을 명했다. 한편, 사나다 유키무라는 세상의 평화를 위한 목적은 토요마사와 같았지만 다른 방식(검술로 전쟁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방식)으로 오사카 편에 섰다. 어찌보면 유키무라와 토요마사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그들은 세키슈사이 검법에 관해 다음과 같은 철학적 문답을 주고받는다. 

 


토요마사 : 세키슈사이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꽁꽁 묶인 부자유가 있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 부자유란 삶과 죽음이라고..

유키무라 :  생과 사?

토요마사 : 네. 삶과 죽음만은 아무리 고심하고 아무리 단련하더라도 자기의 힘이나 의지로는 절대로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법.

태어나고 싶은 곳에서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때를 넘기고 살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인간 역시 우주에 의해 생과 사라는 한 점에 꽁꽁 묶여 있으며, 

이를 테면 우주의 부하인 겁니다.

그러므로 새로 주군을 바꿀 필요도 없되, 상대의 주군 역시 우주의 부하일 뿐입니다.


 

야규 가문은 세키슈사이의 가르침에 따랐고, 당시 여러 가문들과 달리 '절대적인 주군'이란 개념이 없었다. 단지, 세상의 흐름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이는 유키무라가 주장했던 '전쟁을 통한 평화론'과 통하는 면이 있었다. '전쟁을 통해 결국 전쟁을 막는다'는 생각과 '우주의 부하'라는 생각은 모두 토요마사가 강조하는 '우주론'과 일맥상통했다. 즉, 이들이 말하는 검술은 사람을 죽이는 검술이 아닌 살리는 검술인 셈이었다. 

 

 

 

 

 


승패의 갈림길 「기세」

전쟁에는 항상 전략의 우열이 존재하고 또한 전술의 실수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사기다. 사기는 승패에 대한 자신감 여부이며, 또 '상황'이다. 때로는 우연인 것 같은 이 '상황'에 따라 전쟁 자체가 한 마리의 살아 있는 짐승처럼 움직이며 미쳐날뛴다. 대표적인 예가 '선봉다툼'이다. 

 

결과적으로 오사카와 에도의 전쟁은 싱겁게 끝났다. 사기가 거의 없는 오사카와 달리 에도는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가문의 명성을 날려야 하는 무사들로 넘쳐났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를 미친듯이 건너오는 '카토'에 맞서 이케다 군의 '오다 우라쿠사이'는 앞다퉈 덴마 쪽으로 후퇴했다. 이로써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오사카는 농성을 준비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즉,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에도쪽이 승기를 잡은 상황이 펼쳐졌고, 준비의 대가답게 이에야스는 지나친 승기를 걱정했다. 

 


이에야스 : 너무 이겼어, 마사즈미. 전쟁은 이기지 않으면 안 돼. 

그러나 지나치게 이겨선 안 되는거야..


마사즈미 : 무슨 잘못이라도 있습니까?

이에야스 : 마사즈미, 잘못은 아니야..

배도 팔 부쯤 불러야 건강에 좋듯 승리도 팔 부쯤이면 충분해. 

너무 이기면 과식한 것과 마찬가지로 몸에 해는 될지언정 약은 되지 않아. 

자네도 이를 잊지 말게.


 

위의 대화에서 혼다 마사즈미는 이에야스의 말을 웃어 넘겼다. 하지만 훗날 이에야스가 죽은 뒤 정적에 의해 오슈의 시골로 쫓겨가서야 비로소 이에야스의 말을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승리의 원인 「불의」

이에야스는 오사카에 있는 오에요 부인(요도 부인 동생)을 사자로 파견해 오사카 쪽에서 먼저 화해를 요청하게끔 강요했다. 농성을 하며 날뛰는 떠돌이 무사들과 달리 성을 지배하고 있던 여자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이 세상의 싸움이란 것은 여자와 남자들의 영원한 싸움이다. 낳고 번식시키는 여자들과 죽이고 사냥하고, 빼앗자고 혈안이 되어 있는 남자들의 싸움이 전쟁의 본질이다. 그리고 말년에 이른 이에야스는 여성의 마음을 통해 가치없는 전쟁은 그대로 흘러버리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에야스는 오사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자신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불의'로써 설명했다.

 


이에야스 : 불의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천벌을 받는 법.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이 점을 명심하고 앞으로 처세를 그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몰아낸 노부나가가 얼마 후 미츠히데에게 살해됐고, 

난폭하다해서 이마가와 가문으로 아버지를 쫓아내 유폐시킨 타케다 신겐은 뜻밖의 죽음을 당했어. 

타이코가 나에게 졌던 코마키 전투 역시 노부나가의 후손을 멸망시키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시다 미츠나리 역시 마찬가지야. 

자신의 분노 때문에 어린 주군을 속여 세키가하라의 모반을 시도하여 그런 최후를 당했지. 

 

모두가 그 마음에 불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불교의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이치는 언제나 인간 세계를 관철하네..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이치라는 것을 알아야 돼.


 

세상의 큰 비극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이상한 어릿광대가 자신의 실력 이상의 지위에 앉아 쇼를 펼칠 때다. 가령, 히데요리 주변에는 실력없는 자들이 오히려 '전쟁불사론'으로 선동했는데, 이에야스는 이와 같이 '허수아비들의 쇼'를 「불의」로 봤다. 히데요리가 진정으로 지혜가 있는 자였다면 주변의 여러가지 의견을 다양하게 듣고 난 뒤, 지혜롭게 이를 활용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크게 지혜로운 자일수록 입보다는 항상 귀를 열었으며, 좁은 식견에 의한 고집보다는 주변의 여러 의견과 지혜를 받아들여 이를 활용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지혜가 막히지 않지만 불행하게도 히데요리는 그렇지 못했다. 

 

히데요리는 떠돌이 무사들을 처리하지 못했고, 그 자신도 곤경에 처했다. 어차피 승부는 결정난 상태에서 받아들인 이후의 전략이 최선이었다. 삭감된 영지로는 떠돌이 무사나 주변 사람들을 모두 먹여살릴 수 없기 때문에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빨리 오사카 성을 버리고 영지이전을 했다면 모든게 해결될 상황이었다. 다만, 인간이란 곤경에 처하면 자기가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가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실제 히데요리가 그러했다. 그는 오노 형제나 천주교도들, 떠돌이 무사들에게 가로막혀 본질에 입각한 행동을 내리지 못했다. '영지이전'이라는 간단한 문제를 너무 복잡하게 해석했으며, 우왕좌왕 했다. 바로 집착과 미련 때문이었다.

 

 

 

 

 

 

 


재앙의 불씨 「집착」

황금에 집착하는 자는 황금 때문에 생명을 잃고, 사치에 집착하는 자는 사치 때문에 불의를 저지른다. 히데요리나 그 가신들에게 도요토미 가문이 영원히 존속되길 바란다면 더 이상 오사카 성에 집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정반대로 나갔다. 해자를 메우고 있는 떠돌이 무사들의 불만을 그대로 받아들여 민심을 떠들석하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전쟁의 무서움을 모르고 자란 평화의 세대였음에도 함부로 전쟁 불사론을 입에 담고 있었다. 전쟁의 고난을 산전수전으로 겪은 이에야스가 보기에 오사카는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결국 떠돌이 무사들의 선동은 도요토미 가문의 옛 신하들에게까지 옮겨 붙었고, 훗날 성을 베개삼아 전사하겠다는 각오까지 울려퍼졌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아들 노부야스를 할복케 했던 노부나가의 아들들을 보살폈고, 자신을 공격했던 히데요시의 아들까지 지켜주었다. 하지만 이에야스의 생각과 달리 어리석게도 상대는 "전부를 얻느냐 혹은 전멸이냐"를 두고 망설이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생각에 용기라는 덧칠을 덕지덕지 해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일반적으로 어린아이의 생각은 유치하다. 논리적인 사고와 달리 요행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리에 대한 확실한 전략이 아닌 요행에 거는 기대를 두고 어린아이와 같은 모자라는 생각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한편, 히데요리는 끝내 유치한 투정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영지이전으로 예정된 코리야마 성을 불태우며 결의를 다지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큰 결정에 앞서 어린아이와 같은 요행을 바란다면 결과는 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