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역사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22편:: 세키가하라 전투」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 이길진 옮김 | 솔 | 2015

by 도양강 2019. 2. 5.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승기를 잡는 결정적 전투였다.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동군-서군'과 연관된 풍습과 전통은 대부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나왔다. 

 

 

 

 


모토타다의 최후

세키가하라 전투의 서막은 '마츠노마루 성'의 「살육전」이었다. 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막상 전쟁이 시작되고나면 '인간성', '윤리'와 같은 덕목은 밑바탕부터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성을 포기한 인간들의 살육전에는 무엇이 옳은가 하는 차원 따위는 없다. 철저하게 죽고 죽이는 악업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한다. 마츠노마루 성의 상황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성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히데요시가 아름답게 쌓아올렸던 후시미 성은 순식간에 불타 올랐고, 나고야 성도 함락됐다. 하지만 마츠노마루 성주, '모토타다'의 최후는 비장미가 느껴질 정도로 매서웠다. 그 이유는 미츠나리의 전략이 너무 잔인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츠나리는 농성에 가담한 세력들의 가족들을 볼모로 삼아 공격 수단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인간의 정을 무시한 계략이었다.

 


코카 무리(배신자 집단): 저희 코카 무리 중에서
내응자가 나온 데 대해서는 감히 무어라 사죄 드릴 말이 없습니다. 
내응자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저희들과는 무관한 일. 저희들은 절대로 뜻을 바꿀 자들이 아닙니다. 
부디 저희들에게 성주 대리님과 마지막 길을 같이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모토타다(히코에몬): (빙긋이 웃으며) 알겠다. 
사람들 중에는 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주판이라도 놓는 자가 있게 마련이야. 

좋아. 처음부터 나는 너희들을 포섭할 생각이었지. 

그러나 너희들 모두 이 성에서 나와 함께 전사해서는 안 돼. 
나는 너희들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너희들이 다 같이 전사하면, 
배신한 자와 주판을 잘못 놓은 자를 
어떻게 세상에 알릴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몸을 숨기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가진 사람들. 
성이 함락되기 전에 탈출할 방법을 강구하도록. 

배신자 사십여 명의 이름을 
반드시 주군에게 알려야 해. 

내 눈은 틀림없어. 주군의 승리는 확고부동한 것이야


 

모토타다는 이에야스의 인질 시절부터 함께했던 심복이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정의를 버린 사람들을 재판할 수 있는 마지막 전술을 구사했다.     

 

 

 

 

 

 


이에야스의 움직임

이에야스는 후시니 성이 함락되는 상황에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의 충복들이 모두 우에스기와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본인은 히데요시가 남긴 가신들과 함께 또다른 히데요시의 충복들을 상대해야하는 묘한 상황이었다. 만일 다이묘들이 진심으로 이에야스를 따르지 않는다면 결과는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최후를 통해 깨달은 바가 있었다.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가문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진왜란으로 병력을 크게 소모해버린 탓에 결국 이에야스를 두려워하며 죽어갔다. 히데요시가 없는 상황에서 이에야스는 평범한 다이묘로 인생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미츠나리를 상대로 '도쿠가와 vs 도요토미' 구도를 만든다면, 자신 역시 히데요시, 노부나가와 같은 절차를 밟게 된다. 결국 우에스기와 같은 세력들을 키워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야스에게 있어, 최고의 전략은 분열된 도요토미 가문의 장수들이 서로 싸우게하는 방법이었다. 

 


이에야스: 전쟁이란 말일세. 
일단 시작되면 우선 사기가 높아야 해. 
언제라도 전두에 나설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거야.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은 함성이나 허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진실일세. 
 우리편의 실질적인 역량이 중요한 거야. 

 실리도 없으면서 허세를 부린다...
전쟁에 앞서 이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 
이 오산은 반드시 패배의 원인. 

 그래서 나는 오늘 참석하지 않고, 
나오마사와 타다카츠에게 장수들의 역량을 시험하도록 하려는 것일세


 

이에야스는 히데요시 휘하에 있었던 사냥개 같은 장수들에게 '선택권'을 줬다. 인간에게 억지로 뭔가를 시키는 것만큼 해로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일이란 순리대로 움직이는 법이며, 순리는 언제나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일이 성공하려면, 공동 목표를 위해 리더를 진심으로 따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에야스는 장수들에게 불리한 정보는 솔직하게 전달했고, 유리한 정보를 굳이 강조하지 않았다. 반면, 미츠나리는 장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는 부분에 있어 취약점을 드러냈다. 미츠나리는 인간의 '자율성'을 이에야스만큼 잘 다루지 못했다. 

 

만일 도요토미 가문의 장수들이 하나로 뭉쳤다면, 이에야스는 미츠나리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또, 미츠나리가 이에야스 편에 선 장수들의 부인들을 인질로 사로잡지 않았다면, 세키가하라 전투의 양상이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미츠나리는 어리석게도 인질을 책략으로 내세웠고, 가토 기요마사, 마사노리 세력이 확실하게 반기를 들게 만들었다. 무장들은 상대가 거세게 나올수록 더욱 거세게 저항하는 습성이 있는데, 문관 출신인 미츠나리는 이와 같은 원리를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죽음을 무릅쓴 도요토미측 장수들의 각오를 듣고 나서야 이에야스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에야스의 깨달음

이에야스가 오사카로 향하던 중, 오야마에서 손수 만든 지휘채를 잃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전투에서 지휘채의 역할은 병사들의 사기와 이어질 만큼 중요한 도구였다. 전투에 앞서 지휘채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병사들 사기와 관련된 중대한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에야스는 일단 급한대로 근처 대나무 숲에서 형식적인 지휘채를 만들었다. 

 


실력이 있다면, 지휘채 유무에 따라 마음이 흔들릴 이유가 없다. 
지휘채가 없으면 새로 만들면 된다. 

문제는 지휘채에 따라 흔들리는 마음이다.

주변에 지휘할 장수들이 없는데도 
굳이 형식적인 지휘채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분명 '무리함' 을 불러온다


 

 

이에야스는 지휘채 유무에 따라 심하게 동요된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다. 지휘채 사건을 통해 '인위와 작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질타했던 것이다. 모든 일에 '순리'를 강조하는 이에야스였지만 세키가하라 전투를 앞두고 마음의 동요를 겪었다. 그 증거가 바로 '임시 지휘채'를 부랴부랴 제작한 일이었다. 억지로 하는 일은 한때 소강 상태나 잠깐의 번영을 구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크게 무너진다. '패권을 눈앞에 두고 중도에서 배신을 당한 노부나가', '조선을 통해 명나라 대륙의 패권다툼에 무리하다 결국 죽음을 초래한 히데요시'였다. 이에 대해, 이에야스는 본인 역시 천하를 손에 넣고 싶어하는 억지스러운 욕심과 마음이 형식 뿐인 지휘채에 연연하도록 만든 게 아닌지를 반문했다.

 


전쟁터에서 지휘하는 것만으로 천하의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람들을 심복시킬 수 있는 '덕'과 자연의 뜻에 부응하는 진리가 필요하다


 

이에야스는 임시로 만든 지휘채를 다시 대나무숲에 버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라 해서 장수들에게 숨기지 않았다. 히데요리의 이름으로 싸우는 전쟁, 미츠나리 편에 가담해도 좋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하지만 장수들이 정작 두려워했던 부분은 오히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이에야스의 자신감과 그 뒤의 실력과 기반이었다. 

 

지휘채에 대한 이에야스의 통찰은 현대인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 현대인에게 지휘채란, 사치품, 명예, 허영심과 같은 것들이다. 만일 리더가 실력을 키울 생각은 하지않고, 겉보기에 그럴 듯한 어떤 것을 위해 무리를 한다면 그 조직은 조그마한 위기에도 파멸을 피할 수 없다. 사심으로 가득찬 마음은 사람을 무리하게 만들며, 이와 같은 '무리'이후에는 반드시 진흙탕 싸움이 펼쳐진다. 

 

이에야스는 뭔가 무리하려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순리를 생각했다. 그래서 임시 지휘채도 버렸다. 세상의 평화가 한낱 지휘채 따위에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자신이 죽더라도 세상의 평화가 지켜져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휘채와 같은 물질적인 상징이 아닌 정신적인 구심점이 필요했다. 인위적인 것은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후대에 이어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는 히데요시가 남긴 엄청난 황금과 오사카 성이다. 히데요시가 남긴 인위적인 화려함은 히데요리와 도요토미 가문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를 반면교사로 삼았던 것이다.

 

 

 

 

 

 


세키가하라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는 이에야스의 명령이 아닌 무사들의 자율에 의해 시작되었다.


모스케: 여러분이 가신이라면 주군이 일일이 지시를 내리실 것이지만, 
여러분은 가신이 아닙니다.
우군입니다. 

그 우군이 어째서 팔짱을 끼고 있습니까? 
속히 키소가와를 건너 활동하십시오. 

            주군도 출진에 대해서는 방심하고 있지 않으므로 안심하라고 서신에 씌어 있습니다. 
주군이 출진을 미루고 계신 것은 감기 때문도 다른 사정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오직 이 일은, 여러분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이에야스는 바보같은 우직함을 지닌 모스케를 장수들에게 보낸다. 우직한 성격의 모스케는 거짓을 고할 수 없었기에 이에야스를 목놓아 기다리는 장수들에게 굳이 핑계를 대지 않았다. 장수들이 스스로 움직이기를 촉구하는 이에야스의 의도를 모스케가 그대로 전달한 셈이다. 그 결과, 장수들은 알아서 움직여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야스가 노린 것은 '자발심'에 의한 순리였다. 억지로 움직이는 군대와 스스로 움직이는 군대는 기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세는 흐름을 만들고, 흐름은 승패를 결정한다. 그리고 자연은 승패 따위에 관심없으며, 승패의 기준은 오직 인간에게 있다. 즉, 순리는 승리하고, 역리는 패배한다. 

 

이에야스의 '방관자적 자세'는 세키가하라 전투를 이상한 흐름으로 몰고갔다. "도요토미 가문의 장수들이 도요토미 가문을 무너뜨리는 전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 반역이었지만 오히려 반역이 순리가 되는 상황이 형성됐다. 이 모든 것은 이에야스의 치밀한 준비를 통해 '역리'를 '순리'로 만든 노련함에 있었다.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기세인데, 기세는 한두 명의 잔꾀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장수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었고, 스스로 움직이는 주체들로 이뤄진 집단은 기세가 흐름을 바꿔놓을 정도로 강렬하게 불타 올랐다. 결과적으로 미츠나리는 자연스럽게 반역자가 되었다. 기세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허세와 과장

미츠나리는 세키가하라 전투에 앞서 병력의 수를 과장했다. 1,500 정도인 시마즈의 군사를 5,000으로 부풀렸고, 2만의 모리 테루모토의 군사도 4~5만으로 선전하여 총 18만 4970명의 군사가 집결했다고 공표했다. 

 

위에서 언급했듯 싸움은 기세가 중요하다. 기세가 부족하면 순리도 역리가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그래서 실력이 부족한 자들은 싸움에 앞서 허세와 과장이 앞선다. 상대보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일순간 기세로써 흐름을 타기 위함이다. 이는 짖는 개와 궁지에 몰린 인간의 공통점이다. 누구나 궁지에 몰릴수록 그 선전은 과대해지고 위협을 포함하며 허세와 헛웃음이 뒤섞인다. 그래서 초보일수록 화려하고, 고수는 담담하다. 가령, 히데요시는 조선과의 전투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자 필요 이상으로 성을 호화롭게 장식했고, 다이고에서 꽃놀이까지 했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한 자가 약점을 감추려 짖어댈수록, 더욱 두려워하는 자가 나타난다. 진정한 실력자들은 짖는 소리 뒤에 숨어있는 초라한 기운을 역이용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츠나리는 운이 없었다. 이에야스가 바로 진정한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이에야스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미츠나리를 상대했고,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츠나리는 점차 불안해졌다. 이에야스의 움직임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모리 테루모토와 같은 자들은 아예 산 뒤쪽에 진을 쳐놓고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후방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고니시 유키나가쪽을 공격한 탓에 고니시 유키나가 역시 망설였고, 시마즈 발도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츠나리의 부족한 경험은 치명적이었다. 그는 실전에서 앞장서 전투를 치른 경험이 전혀 없었다. 지휘자이기는 하나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당시 미츠나리는 히데요시의 명을 전달하는 부장에 불과했다. 

 

 

 

 

 

 


계획과 실전의 차이

전장의 생물이며, 실시간으로 살아 움직인다. 전투에서는 음과 양이 존재하며, 일단 공격당하는 쪽에 서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동적으로 변하면서 음기가 전군을 휩쓸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공격하는 쪽이 되면, 많은 양기를 불러일으켜 병졸에 이르기까지 활기가 넘쳐난다. 가령, 미츠나리의 부대가 후니시 성을 공략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양기가 흘렀지만 용맹한 시마즈 요시히로가 퇴각할 즈음부터 음기로 돌변한 것과 같은 사례다. 또한, 전황의 움직임이 개개인의 행운과 불운을 엮어나가며 일단 크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밀어닥치는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거센 '기세'로 돌변한다. 그때는 공격하는 자도 퇴각하는 자도 왜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게 된다. 

 

세키가하라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흥미로운 점은 '중립'에 섰던 도요토미 쪽의 가문들이다. 그중 가장 미츠나리 편에 서야 했던 가문은 히데아키 쪽이었다. 히데아키는 히데요시의 조카이며, 어릴 적 네네(히데요시 부인)의 품에서 자랐다. 히데아키는 분명 도요토미 가문의 편에 서야 했지만 공교롭게도 자신의 위기상황(히데요시가 자신을 처단)에서 자신을 구해준 사람은 이에야스였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게다가 도요토미 가문의 핵심인 코다이인(네네)까지 이에야스의 편에 섰다. 결국 히데아키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보내면서 미츠나리와 이에야스 둘 중에서 더 우세한 쪽에 몸을 맡기겠다는 얄팍한 결정을 내렸다.

 


 

히데아키: 미츠나리에게는 이미 군비도 없어. 지갑이 바닥난 거야.
그래서 마시타에게도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있다더군. 

이런 어마어마한 그림의 떡을 보내는 자는 대개 실력이 형편없어. 
인간이란 자기가 발가벗겨지면 남도 벗기고 싶어지게 마련이지.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면 모두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길 바라는 법이야


 

전장의 상황은 이에야스의 도착 전후로 급격히 변했다. 만일 이에야스가 도착한다면 우에스기는 도쿠가와 쪽과 맞설 의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셈이 되고, 서군의 사기는 땅으로 떨어진다. 미츠나리는 '우에스기' 때문에 이에야스가 섣불리 올 수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며 서군을 모았기 때문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서군이 승기를 잡으려면, 시마즈 요시히로의 주장대로 이에야스가 오기전에 기습을 감행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모리 테루모토나 히데아키 그리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미츠나리의 명령에 움직이지 않았고, 게다가 미츠나리 역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사실상 미츠나리의 생각대로라면, 인간이란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벌레들과 같아야만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츠나리의 생각만큼 욕망 때문에 큰 위험을 시도하려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이란 미끼에 걸릴 수 밖에 없는 약점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모험 앞에서는 겁쟁이가 된다. 미츠나리는 인간의 욕망과 계산(이성)을 한바구니에 넣지 않았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미끼에 걸리지 않았고, 모리 테루모토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성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미츠나리가 보기에 인간은 분명 미끼로 움직이는 존재였지만 정작 실전은 달랐던 것이다.

 

즉, 자신의 뛰어난 두뇌를 맹신한 나머지 인간에 대한 진정성과 존중을 망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사람은 자신을 존경해주는 사람을 존경하며, 누군가를 무시하면 자신도 무시당한다. 미츠나리가 인간으로써 존경하는 인물은 오타니 요시츠쿠밖에 없었다. 미츠나리가 존경하는 만큼 오타니 요시츠쿠만이 미츠나리 옆에서 미츠나리를 진심으로 도왔다. 리더는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을 주변에 둠으로써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지만 미츠나리는 이런 원리를 진작에 깨닫지 못했다. 사람에 대한 존경이 없는 미츠나리였기에 주변의 신뢰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에야스의 상황은 미츠나리와 정반대였다.

 

일곱 장수에 쫓겼던 미츠나리를 이에야스는 진심을 다해 변호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과거 이에야스에게 꾸중을 들었던 일곱 장수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다. 실력자이면서 동시에 주변 인물들을 진심으로 존경한 이에야스와 달리 미츠나리는 서군의 총대장이었던 모리 테루모토에조차 진심을 털어놓지 않았고, 책략으로써 끌어들이는 데에만 집중한 결과였다. 이로써 막상 전투가 펼쳐지자 그들은 미츠나리를 위해 싸우지 않고 자신의 몸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평소 병력이나 술책을 그대로 '힘'이라 믿고 행동한 미츠나리는 이에야스의 느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야전 사령관

이에야스의 생애는 인내로 일관되고 그 통치는 느긋한 나무처럼 자랐다. 하지만 전쟁터에서의 이에야스는 질풍과 같은 맹장이었다. 이에야스에 있어 심사숙고란 "전쟁터에 나가기 전까지"를 의미했다. 이에야스는 일단 전쟁터에 나서면 때로는 무모해 보일 만큼 신출귀몰한 행동을 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역시 이에야스는 상상을 초월한 방식을 구사한다. 

 

전투가 시작되던 날, 이에야스는 새벽 안개 속에서 본진을 세키가하라 동쪽 끝까지 전진하여 배치했다. 이는 생각하기에 따라 경솔하고, 조급할 수 있는 배치였다. 명목상 미츠나리 군의 숫자는 이에야스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숫자적으로 열세에 있는 쪽이 먼저 적의 퇴로를 끊고 움직이는 전략은 보통 자신감으로는 운영할 수 없는 전술이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비상식적인 배치로 인해 전쟁에 능한 시마즈 요시히로조차 생각이 깊어졌다. 이에야스의 전술은 뭔가 있지 않는 이상 구사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에야스가 노린 것은 바로 이점이었다. 시마즈 요시히로 수준의 무장조차 생각이 복잡해졌다면, 고니시 유키나가나 모리 테루모토의 상황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에야스가 벌써 후방까지 침투했다는 정보는 적이 어느새 안개속을 헤치고 움직였다는 놀라움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쪽의 기세를 꺾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이에야스의 과감한 전진에 가장 고민에 빠진 쪽은 '히데아키'였다. 히데아키는 이에야스 측에 백모 코다이인을 배반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리한 쪽에 지원을 할 생각이었다. 마치 제 3국의 용병처럼 움직인다는 속셈이었지만 이에야스의 행동이 너무나도 빨랐다. 이에야스는 진의 배치를 동쪽 끝까지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히데아키 쪽에 감시관을 보냈다. 이때 미츠나리 쪽의 자객까지 동시에 도착했다. 

 

 

 

 

 

 


중립자의 한계

실력이 부족한 자가 중립을 표방하며 실리를 좇는 정책은 결국 독이 된다. 실제 히데아키는 궁지에 몰린 비참한 쥐가 되고 말았다. 이는 일종의 짓궃은 인생의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실력을 갖추지 않은 자가 말하는 '중립'은 '눈칫밥'으로 인식된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눈치를 보는 자는 결국 양쪽 모두의 공격을 받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에야스는 전투가 길어지자 지체없이 노부나가와 같은 불같은 지시를 내리며 히데아키를 향해 발포 명령을 내렸다. 만일 히데아키가 미츠나리 쪽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히데아키부터 처리할 작정이었다. 전세를 보는 이에야스의 결정은 놀라운 속도였다. 히데아키는 이에야스가 자신쪽을 향해 총포를 쏘자마자 중립주의를 내던지고 미츠나리 측을 공격해 들어갔다. 히데아키를 향해 번개처럼 결정을 내렸던 이에야스의 결단력은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기를 완전히 동군쪽으로 기울게 만든 방아쇠였다.

 

세키가하라 전투의 중립자들은 비단 히데아키만이 아니었다. 시마즈 요시히로, 고니시 유키나가도 중립을 지켰다. 특히 시마즈 요시히로는 위기 앞에서 인간으로써 궁극의 경지를 보였다. 

 

[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 요시히로는 전장의 승기가 이에야스 쪽으로 기울자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결정을 내린다. 요시히로는 1,500명으로 어린진으로 겹겹이 둘러싼 이에야스의 본진을 향해 정면 돌파를 감행했다. 이와 같은 시마즈 발도대의 진격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요시히로가 결정을 내릴 무렵에는 사실상 이미 승부가 결정났으며, "후퇴와 전멸" 두 가지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요시히로는 다음과 같은 뜻밖의 말을 던졌다.


시마즈 요시히로: 하하하...그래. 처음부터 질 생각으로 쳐들어갔다....고 한다면 
과연 치욕이야. 좋아, 돌파하겠다는 기백으로 본진을 공격하겠다. 
시마즈는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고 어떤 대군과도 당당하게 맞선다.... 그것으로 족한 거야


 

승부가 결정난 상황에서, 느닷없이 이에야스의 본진을 향해 돌격하는 부대를 보며, 사카이, 츠츠이 군은 그 역류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의표를 찔려 버리면, 인간의 두뇌는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부추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중앙을 향해 정면 돌파를 감행할 수 있는 선택은 단순히 용기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에 걸맞는 실력이 있어야 하며, 시마즈의 발도대는 이것이 가능했다. 시마즈 부대는 말을 타면서도 상대를 공략하는 전술에 능했으며, 그 유명한 '발도대'는 목숨을 버린 용맹한 자들로 채워진 정예병들이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비록 토요히사와 모리아츠를 잃었지만 3개 부대를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 이에야스의 어린진을 비껴서 빠져 나갔다. 단 1,500기로 돌파한 병사의 수가 3개 부대를 지나치면서 80기로 줄었지만, 이는 일본에서도 전대미문의 전쟁터 이탈 작전이었다. 

 

시마즈 군이 서쪽으로 퇴각함에 따라 세키가하라 전투는 끝이 났고, 모리군은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승자의 태도

세키가하라 전투는 많은 영웅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충신 요시츠쿠, 일본 전역에 용맹을 떨쳤던 시마즈 토요히사, 미츠나리의 오른팔이었던 시마 사콘 카츠타케가 전사했다. 비록 이에야스 개인은 승리했지만 일본 전체 상황으로 볼 때, 아쉬운 전투였다. 어떻게보면 일어나서는 안 되는 명분 없는 전쟁이었고, 이익으로 뭉쳐진 집단의 말로였다. 결론적으로 진심이 아닌 이익과 책략으로 뭉쳐진 도요토미 가문의 부족한 덕이 남기고 간 상처가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였다. 

 


이에야스: 뭐, 승리의 함성?? 전쟁은 이제부터야. 
승리의 함성은 오사카에 돌아가 인질로 잡혀 있는 사람들을 무사히 풀어준 뒤...알겠나,
이긴 뒤에도 투구 끈을 졸라매야 하는거야


 

이에야스는 승리의 공을 모두 장수에게 돌렸다. 심지어 "타다요시(이에야스의 친아들)"의 목숨이 경각에 놓인 상황에서 이를 내팽겨친 다이로쿠를 칭찬했다. 타다요시는 시마즈 요시히로를 상대하겠다는 만용을 부렸고, 결국 진흙탕 싸움으로 부하들을 통제하지 못한 채 부상을 당했다. 이를 두고 이에야스는 리더가 갖춰야 할 자세를 언급하며 타다요시를 꾸짖는다.


이에야스: 밑에 깔린 것이 시모츠케노카미(타다요시)임을 알았을 때 
그대도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가세하고 싶었을 것이야. 
 그러나 도와주면 훗날을 위해 좋지 않아. 

오늘은 첫 출전. 

그런데 도움을 받았다면 시모츠케노카미는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끝내 모르게 될 테니까. 
혼전 중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텐데, 그대의 마음가짐은 참으로 훌륭했다

 실수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진정한 전투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다음 전투에 나선다면

반드시 용병을 잘못하여 많은 부하들에게 눈물을 보이게 된다. 

아니,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아. 
그 과오가 전군의 승패를 결정하게 될 경우가 적지 않다. 
전투의 실체를 잘 알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야. 
오늘 그대가 보인 태도는 진정으로 시모츠케를 생각해서 한 일. 

정말 훌륭했다!


 

이에야스는 모든 무장들이 보는 앞에서 다이로쿠를 칭찬한 뒤, 타다요시의 상처에 직접 고약을 발라 치료했다. 자식을 아끼는 마음을 표면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장수들의 공을 치하했고, 자식의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그대로 꾸짖는 이에야스의 언변은 훌륭했다. 이에야스에게 있어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보다 더 값진 것은 장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힘이었다.

 

이에야스가 1인자로 가는 길에 있어 세키가하라 전투는 큰 선물이 되었다.